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202

작은 배려, 큰 웃음

1주일 간 속이 좋지 않아 누워만 계셨던 구순 노모.병원에서 링거 맞고 오신 후 인절미 두 쪽 잡수시더니 느릿느릿 텃밭으로 나가신다. 고물고물한 증손주 둘이 노할머니를 따라 텃밭에 나와 마늘밭에 물도 주고, 흙 속의 지렁이가 나오라고 구멍을 낸다. 어느새, 텃밭 집사 남편은 노모의 최애 감나무에 텃밭 주인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감이 많이 열리라고 기도하며 약 뿌리기를 마쳤고. 노모의 천국, 텃밭에는 주인이 편찮으셔도열심히 자라 정리해 줘야 할 채소들이 여럿이다. 지금은 쪽파와 부추를 정리할 때. ​여기 쪽파 캐서 가져가라~ 부추도 잘라줘야 하는데...예. 엄마...​먹을 수 있는 때를 놓쳐 버리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셨을 노모.채소 처리반(?)인 내가 오니, 얼마나 반가우셨을까?쭈그리고 앉아 쪽파를 뽑으신..

집 재료를 이용한 뚝딱 갓김치

집에서 먹는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는 마트에 장보러 가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의 조리 concept은 대체로 '냉장고 털이'다. 냉장고에 보관된 여러 재료들을 훑어 그날그날 끼니를 계획하는 것이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이 재미난 놀이이기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마트에서 장을 많이 보지 않는데도 먹을거리가 늘 가득한 걸 보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던 하나님께서 엄마의 텃밭을 통해 하늘의 만나를 제공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 텃밭에서 채취한 야생 갓을 정리해 일반적인 재료 대신 게장 간장 국물과 마른 누룽지를 이용해 색다른 조리를 해 보았다.조리도 창작이니까...

자세히 보니, 봄(春)

운무 때문인지 사방이 뿌옇게 보이는 겨울과 봄 사이.마른 잎으로 가득한 땅의 곳곳에서 삐죽삐죽 올라오고 있는 새싹들을 발견할 때면 경이로운 하나님의 세상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춥다고 아우성인데, 때맞춰 언 땅을 비집고 땅 위로 쑥쑥 올라오는 식물들의 순종과 협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지금 엄마의 꽃밭에는 꽃무릇과 튤립, 수선화와 붓꽃 새싹들이 작년보다 더 많은 포기를 불려 열심히 올라오고 있다. 보기에 딱히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나무들에서도 시기에 반응하는 변화가 분명히 있어 자세히 보니 꽃망울을 한껏 맺고 있었다. 어휴, 그간 눈길을 주지 못한 게 무척 미안했다. 슬슬 가지치기도 해 줘야 작은 꽃밭에서 이웃끼리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게 될 터다.   울 엄마 최애 과실나무인 감나무..

봄이 반가운 이유

속살로 찬 바람이 여전히 스며들지만, 노모의 마음이 부산해진 것을 보니 그래도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으셔도 우리 부부만 있으면 뭐든 하실 것 같은가 보다.​새벽에 온천을 다녀와 아침 식사를 마친 후부터 엄마는 텃밭에 모아놓았던 마른 나뭇가지 더미를 태우고, 남편은 울타리 옆 완두콩을 심을 곳과 감나무 양편의 텃밭에 계분을 뿌렸다.   이에 힘을 내, 엄마는 구부러진 허리에 뒷짐을 지고 뒤란과 화단, 텃밭 여기저기를 다니며 딱딱해진 흙을 부수고, 흩어진 마른 잎들을 긁어 한곳에 모으며 겨우내 돌보지 못했던 마당을 열심히 돌아다니셨다. 기온도 10도 이상이라 겨우내 집안에만 계셨던 노모가 바깥놀이를 하시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제는 계분 뿌린 텃밭의 흙을 뒤엎을..

'귀한 것' 천지

사랑하는 권사님께 권사님, 그간 평안하셨어요? 성탄절을 보내면서 ㄷㄷ교회 생각도 나고 또 권사님 생각도 하고 그래서 혼자 그리워했더랬는데요. 오늘 주일 예배 후에 ㄷㄷ교회에서 오신 교우분이랑 인사를 나누었는데 권사님께서 보내신 게 있다고 전해주셨어요. 집에 와서 가방을 열고 하나하나 꺼내 보는데 눈앞에 권사님 어머니 댁 텃밭이 떠올랐어요. 아.... 거기서 자란 귀한 아이들이겠구나 하구요.. 그래서 혼자 조금 울었어요..ㅠ 권사님이랑 같이 고구마 캐던 그날이 그리워서요..저희는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제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구요. 둘째는 열심히, 막내는 뽀도시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요 ㅎ 지금은 2주간의 겨울 방학 중인데요.. 하루하루 줄어드는 방학일에 조금은 슬퍼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말린 나물 4종 세트

지질이 썩 좋지는 않지만, 주인이 성의껏 보듬는 덕에 해마다 어지간히 수확하는 고구마줄기와 무, 호박, 가지를 말려 놓으면 겨울철 채소 음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물론 생 채소에 비해 조리 전 과정이 좀 더 필요하지만, 생 채소와 달리 꼬들꼬들한 식감이 있어 장보기 어려운 날 특식으로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다. ---------------------------------------------------* 말린 고구마줄기나물1. 물에 서너번 씻어 헹군 후 따뜻한 물에 3-4시간가량 담가 물을 먹여 강불에 30분 정도 푹 삶는다.2.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하룻 밤 푹 담근 후 찬 물에 고구마줄기를 깨끗이 씻어 채반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다3.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고 국간장, 마늘..

채소꽃을 보다가...

평생 정원에 핀 장미만 꽃인 줄 알았다가, 세상천지가 다 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엄마의 텃밭을 돌보면서부터다. 텃밭에서 가을이 올 것을 알리는 빠른 꽃 중의 하나가 부추. 여름 내 부추전과 부추김치 거리를 제공하더니 이제는 자금자금한 흰색꽃을 머리에 인, 한 무리의 부추꽃이 한창이다. 파란 하늘을 향해 살랑거리면 하얀 안개꽃 저리 가라 싶을 정도로 아리한 부추꽃의 매력에 시선을 뗄 수 없다. 부끄러운지 늘 얼굴을 아래로 숙이고 피는 연보라 가지꽃은 아가의 연한 피부같이 해맑다. 너무 예뻐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예쁜 손녀의 얼굴까지 포착됐다. 너도, 꽃도 참 예쁘다. 텃밭 울타리에 넓게 퍼져, 손바닥보다 더 넓은 이파리 사이로 얼굴을 쑥 내민 진노란 호박꽃도 건강함을 내뿜는 씩씩한 꽃이다. 이파리에..

사랑 텃밭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계절은 바뀌니 농부의 마음은 벌써 가을 김장을 향해 달려간다. 뜨거운 태양 아래, 웃통을 벗은 남편과 어린 손자가 김장 무밭에 영양소를 골고루 뿌렸던 게 8월 중순이었는데, 일주일 후에 가 보니 13개 정도의 두둑이 정갈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에휴, 이 더위에 구순 넘은 노구를 이끌고 일주일 내내, 이미 오륙십 줄에 들어선 당신의 5남매에게 살아있는 동안 무 한 개라도 더 주고 싶어 손으로 긁고 다듬으셨을 엄마의 마음이 읽혀져 짠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런 텃밭 주인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뿌려놓은 무씨앗이 싹이 터 1주일 새 예쁜 떡잎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문득, 깔끔한 작은 밭은 '엄마', 그 안의 초록초록 귀여운 무 떡잎들은 '엄마의 사랑'이란 생각이 드니, 엄마의 텃밭은 '사..

명아주 지팡이

올 봄, 양파와 마늘이 심겨진 밭에 생소한 풀이 자라고 있는데도 깔끔한 텃밭 주인은 왜 그 풀을 뽑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양파와 마늘을 수확한 후에도 텅 빈 밭에서 여전히 키를 높여 자라고 있길래, 엄마께 그냥 놔두는 이유를 물었더니, '명아주'인데 다 자라면 지팡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내 눈에는 그렇고 그런 잡초처럼 보였건만, 풀에 박식한 텃밭 주인은 애당초 작은 풀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 보고 지팡이를 만들만큼 쑥쑥 자라라고 가뭄엔 물도 주며 조용히 기다리셨다. 8월 어느 주말, 텃밭에서 자라던 명아주 2개가 사라지고, 현관문 앞에 울퉁불퉁한 2 개의 막대기가 세워져 있었는데, 첫 눈에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임을 알아보았다.   공장에서 만든 매끈하고 근사한 지팡이가 지천인 지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