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봄이 반가운 이유

신실하심 2025. 3. 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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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로 찬 바람이 여전히 스며들지만, 노모의 마음이 부산해진 것을 보니 그래도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으셔도 우리 부부만 있으면 뭐든 하실 것 같은가 보다.

새벽에 온천을 다녀와 아침 식사를 마친 후부터 엄마는 텃밭에 모아놓았던 마른 나뭇가지 더미를 태우고, 남편은 울타리 옆 완두콩을 심을 곳과 감나무 양편의 텃밭에 계분을 뿌렸다.

 

이에 힘을 내, 엄마는 구부러진 허리에 뒷짐을 지고 뒤란과 화단, 텃밭 여기저기를 다니며 딱딱해진 흙을 부수고, 흩어진 마른 잎들을 긁어 한곳에 모으며 겨우내 돌보지 못했던 마당을 열심히 돌아다니셨다. 기온도 10도 이상이라 겨우내 집안에만 계셨던 노모가 바깥놀이를 하시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제는 계분 뿌린 텃밭의 흙을 뒤엎을 차례. 계분을 뿌려놓고 서울 간 남편 대신 내가 나설 차례. 삽을 발로 눌러 땅속에 꽂고 양 팔로 삽을 들어 올려 흙을 뒤엎는 작업을 매해 하지만, 역시 힘이 달린다. 온몸에는 땀이 주르륵 흐르고...

이걸 오늘 해 놓지 않으면 엄마가 몇 날 동안 일하시다 병까지 나시면 형제들이 더 낭패라, 열심히 땅을 엎고 또 엎고 있는데, 호미로 딱딱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계신 노모의 뒷모습을 보며 올 한 해도 이렇게 잘 지내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사실 난 허리 굽은 엄마가 저 정도로 움직이고 계신 게 참 감사해서, 어느 때보다 올해의 봄이 너무 반갑다.

 

어느새 방에서 놀고 있던 손주들이 마당에 나와 지하실에서 연장 하나씩 들고 우리를 돕는단다. 근데 돕는 건지, 방해하는 건지...

 

오전에 한바탕 일을 하고 났더니, 시장기가 몰려왔다.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맑은장국 국수를 후다닥 만들어 한 사발씩 주었더니, 연신 맛있다고 아우성이다. 손녀는 사진까지 찍겠단다. 후루룩... 쩝쩝... 거의 100년의 차이가 나는 증조할머니와 증손주들의 즐거운 밥상. 엄마도 너희들과 먹으니 정말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잡수셨다.

 

식사 후 쉴 틈도 없이 바로 나와 완두콩을 심기로 했다.

증조할머니가 구멍을 내주면 증손주들은 구멍에 완두콩 세 알을 넣고 나는 흙을 얇게 덮어주는 3인 1조의 작업이다. 누나 동생이 서로 하겠다는 귀여운 다툼이 있었지만 그래도 30여 분 만에 일을 마쳤다.

몇 주 후면 싹이 나고 키가 자라 울타리를 타고 넝쿨을 뻗어나갈 완두콩.

내가 보기에, 완두콩 같은 텃밭 식물들은 먹을거리이기도 하지만, 엄마와 매일의 생명 시간을 동행하는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해서 독거하시지만 혼자가 아닌 삶을 살게 하는 아주 고마운 생명체들이라, 나는 엄마의 기력이 다 하시는 날까지 엄마의 텃밭 생활을 열심히 도울 참이다.

 

오늘의 미션을 다 끝내고 텃밭을 돌아보니 참 고요하다. 하지만, 봄을 맞은 땅속 식물들은 조용히 열일 중일 터.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올해의 봄은 유난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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