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작은 배려, 큰 웃음

신실하심 2025. 4. 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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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간 속이 좋지 않아 누워만 계셨던 구순 노모.
병원에서 링거 맞고 오신 후 인절미 두 쪽 잡수시더니
느릿느릿 텃밭으로 나가신다.
 
고물고물한 증손주 둘이 노할머니를 따라 텃밭에 나와
마늘밭에 물도 주고, 흙 속의 지렁이가 나오라고 구멍을 낸다.

어느새, 텃밭 집사 남편은 노모의 최애 감나무에 텃밭 주인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감이 많이 열리라고 기도하며 약 뿌리기를 마쳤고.

 

노모의 천국, 텃밭에는 주인이 편찮으셔도

열심히 자라 정리해 줘야 할 채소들이 여럿이다.

지금은 쪽파와 부추를 정리할 때.

여기 쪽파 캐서 가져가라~ 부추도 잘라줘야 하는데...

예. 엄마...

먹을 수 있는 때를 놓쳐 버리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셨을 노모.

채소 처리반(?)인 내가 오니,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쭈그리고 앉아 쪽파를 뽑으신다.

 

헐... 허리 아프실 텐데...

노아야~ 신발장 밑에 앉는 의자 갖다 노할머니께 드릴 수 있어?

손자가 얼른 의자를 가져와 노할머니께 드린다.

노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꼬맹이 손자! 너무 훌륭해!!!

 

실 같은 조선 부추를 쪼그리고 앉아 하나씩 가위로 자르는데, 진짜 힘들다.

에휴... 울 엄마는 이걸 어떻게 다 자르고 다듬어 우리에게 주셨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손녀가 가만히 곁으로 온다.

할머니~ 힘들어요?

왜? 도와주려고? 고맙지...

가위를 들려주니 내 옆에서 부추를 하나씩 자르는 손녀의 입에서도 힘들어 소리가 절로 난다.

힘들면 그만해...

아니에요. 할머니 도와주려고 온 거예요...

이 귀요미를 어째^^

 

할머니~ 부추로 뭐해요?

부추전도 만들고 부추김치도 하지...

그럼 오늘 점심에 국수에 부추전 어때요?

좋지!!!

 

이렇게 마트제 채소에 비해 정말 볼품없는 쪽파와 부추지만

주말 한나절, 뽑고 자르고 다듬는 동안

꼬맹이들의 작은 배려와 어른들의 흐뭇한 미소까지 담긴 예쁜 이야기가 있는 그 시간은

경이로운 텃밭 놀이가 우리에게 남긴 행복한 선물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파김치와 부추김치 같은 훌륭한 부산물도 생겼고...!!!

 

엄마~ 건강 잘 추슬러서 올해도 애들이랑 슬기로운 텃밭 놀이 즐겨요~

노모의 생명 시간이 흐르고, 증손주들의 해맑은 웃음이 있는 곳.

노모의 텃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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