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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양파와 마늘이 심겨진 밭에 생소한 풀이 자라고 있는데도 깔끔한 텃밭 주인은 왜 그 풀을 뽑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양파와 마늘을 수확한 후에도 텅 빈 밭에서 여전히 키를 높여 자라고 있길래, 엄마께 그냥 놔두는 이유를 물었더니, '명아주'인데 다 자라면 지팡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내 눈에는 그렇고 그런 잡초처럼 보였건만, 풀에 박식한 텃밭 주인은 애당초 작은 풀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 보고 지팡이를 만들만큼 쑥쑥 자라라고 가뭄엔 물도 주며 조용히 기다리셨다.
8월 어느 주말, 텃밭에서 자라던 명아주 2개가 사라지고, 현관문 앞에 울퉁불퉁한 2 개의 막대기가 세워져 있었는데, 첫 눈에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임을 알아보았다.
공장에서 만든 매끈하고 근사한 지팡이가 지천인 지금, 굳이 들풀 같은 명아주를 길러 전래 동화 속 산신령이 들었을 것 같은 울퉁불퉁한 지팡이를 만들어 놓으신 엄마 말씀이, 예전 어른들은 이런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다는데, 어쩌면 이 지팡이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 추억하게 한 매개체였나보다.
많은 풀들 속에서 명아주를 떡잎부터 알아보신 어른의 깊은 안목(眼目)과 이를 통해 자신의 구십 평생을 돌아보시는 넓은 통찰력을 조용히 서 있는 명아주 지팡이를 통해 오늘 또 새롭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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