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22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딸에게 일이 생겨 돌 반 되는 손자를 하룻 저녁 데리고 자게 되었다. 코로나 덕분에 꼼짝없이 집에서 엄마와만 지내온 터라, 어미 없이 잠을 자 본 적이 없어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촌 누나들을 무척 좋아해서, 집 근처에 사는 누나 2명이 '애기 입에서 엄마를 찾는 일이 없도록 잘 데리고 놀라'는 아들의 미션을 받고 차출되어 우리 집에서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와 누나들이 번갈아 끌어주는 이불 기차도 타고, 누나들의 색종이 놀이도 슬쩍 껴서 여기저기 종이 잔재를 흩날려놓으며, 지 엄마는 전혀 찾지 않고 깔깔 꼴꼴. 가끔 엄마 생각이 나면 누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정도(?). 누나들과 같이 앉아 식기도 후 밥도 잘 먹고... 그런데 잠자리부터는 엄마 앉아줘 하며 칭얼거리기 시..

가족으로 ~ 2021.02.03

독서 링, 재능 나눔

50대 후반, 남편과 함께 노년을 좀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새벽 수영인데, 어느덧 햇수로 7년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감염 사태가 나기 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하루의 시작 시간을 같이 하는 수영반 회원들과 두세달에 한번씩 모임을 가지며 나이, 직업, 성별을 내려놓고 오직 수영을 매개로 즐거운 수다를 떨곤 했다. 낯선 이들과 쉽사리 가까워지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어느 새 수영반 회원들과는 꽤 막역한 사이가 되어 어지간히 편한 이웃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수영장이 문을 닫았을 때는 건강을 위한 안부 등을 잊지 않고 보내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수영장이 다시 개장하고 갑작스런 번개 모임을 가졌을 때, 회원 중 목공을 취미로 배우시는 한 회원께서 우리 수영반 회원들을 위..

일상 속에서 2020.11.20

가을, 억새, 바람 그리고 행복

이른 아침, 자전거 도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싱그러운 바람이 코 끝을 간지른다. 늘 비슷한 구간을 달리지만 항상 새 날인 것 같은 이유는 하늘 그림과 주변 풍경이 매일 바뀌기 때문. 오늘 아침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바람은 싱그럽고, 공기 내음은 상큼하고. 살살 부는 바람에도 억새밭의 아기손들이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얕은 구름 사이로는 태양이 수줍게 떠오르고 아직 집으로 가지 않은 달이 먼 녘에서 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새벽 풍경을 누리고 있다. 억새밭 옆에는 미국 자리공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있고, 도깨비 가지와 파랑, 하양, 빨강 색의 크고 작은 야생 나팔꽃이 온 사방에 가득하다. 먼 빛으로 보이는 벚나무의 잎은 노랗게 물이 들어가고, 강아지풀과 금계국이 바람 리듬에 맞춰 살랑거리는 이른 아침...

일상 속에서 2020.09.24

텃밭표 여름 밥상

외갓집에서 태어나 네 살까지 온양 외할아버지 사택에서 자란 후 서울에 올라와 초중고 및 대학까지 서울에서 나온 나는 엄마가 귀촌하신 13년 전까지만 해도 식재료는 마트에서 사다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어쩌다 지인이 집에서 기른 거라며 건네주는 상추 몇 번 얻어먹은 것 외에 채소는 시장에서, 정육은 대형 마트에서 늘 구매해 먹었으니 진짜 채소 맛은 대부분의 인생 동안 알지 못하고 산 셈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밥상은 그날그날 시장에서 제일 싼 찬거리가 올라왔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남매 외에 드나드는 객 식구가 매일 서너 명은 족히 되는 그런 상황에 언감생심 좋은 먹거리는 우리들까지 올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먹을 거리가 풍족하지도 않고 냉장고나 가스레인지가 있을 리 없는 주방이 아닌..

2020 호박잎 우산 쓰고

작년 겨울 감나무의 비료가 되라고 버린 늙은 호박의 껍질과 함께 버려진 호박씨가 자라 잔디를 다 덮었다. 게다가 폭우 덕에 호박잎은 너울너울 우산만큼 자랐고 호박 줄기는 우산대처럼 삐죽 높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호박잎 아래로 반질반질한 호박 몇 개가 몸을 숨기고 잘도 크고 있다. 또한 작년 11월 경, 근처 목장에서 나온 삭은 소똥을 먹은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려 폭우에도 떨어지지 않고 씩씩하게 매달려 있다. 서너 달 후엔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엄마 가지에 꼭꼭 붙어있기를 잠시 기원해 본다. 근 50여 일을 장마 상태로 보내고 있는 요즈음, 그래도 잠시 비가 뜸할 때면 텃밭 채소들을 채취해 현관문 앞에 갖다 놓고, 비 오는 텃밭을 향해 앉아 무심하게 채소 정리를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

배려...

코로나 19 여파로 온 국민의 생활 반경이 가정 내로 한정되면서 처음에는 감염 위험 때문에 작아진 생활 동선에도 잠잠히 참아 오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감염자의 수가 대폭 감소하면서 그간 참아왔던 가정 외 사회 활동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아직도 감염자는 발생하고 있고, 치료제 개발은 여전히 시간이 걸릴 거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라 되도록 생활 방역 및 개인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은 진행되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늘 하던 수영도 체육시설이 폐쇄되면서, 2달 반 째 운동을 하지 못해 우스개 소리로 '확~~찐 자'가 되어가는 듯해 무릎 운동 겸 바깥공기 쐬는 기쁨을 누리려고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왕복 14,5 km 정도의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있다. 늘 집에서 출발해 관평천을 지나 ..

일상 속에서 2020.05.07

예수님을 만난 감격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있는 교회' 올해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표어이다. 본당의 강단 위에 크게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면서 예수님을 만나 감격했던 때가 언제였나 반추하게 되었다. 40년 전 대학 졸업 후 여고 교사로 재직할 시 심각한 허리 통증으로 입원해 20키로 추를 허리에 매달아 밤낮으로 트랙션을 하는 바람에 몸 움직임이 쉽지 않았던 시절, 허리 통증과 함께 한밤 중 가위까지 눌려 괴로웠던 순간, 내 입에서 '하나님, 이 정도만 아프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백한 즉시 갑자기 사라져버린 통증과 완전한 평강을 맛본 첫 경험을 필두로, 말씀을 더 알고 싶다고 몸부림치며 밤낮으로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보냈던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여주셨던 여러가지 꿈과 기도의 응답들이 그간 사용했던 기도 노트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