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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 텃밭 한쪽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작은 보리수나무에 열매가 다닥다닥 맺혔다.
꽃이 피어있는 기간이 무척 짧은데다, 워낙 작아 우리처럼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사람들은 여간해서 눈여겨볼 틈이 없어 빨간 열매가 맺힐 때야 비로소 이미 꽃이 피었다 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올해는 엄마가 보리수꽃이 피었다는 말씀에 후다닥 나가 사진을 찍어두었기에 그나마 보리수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꽃잎이 5장, 꽃색은 두드러지지 않은 크림색에 대부분 이파리 옆에 숨어서 겸손하게 아래를 향해 피는 터라 같은 시기에 피는 사방의 꽃들이 입은 분홍, 보라, 빨강, 노랑 등의 강렬한 옷에 눈길을 주다 보면 밋밋한 모습의 보리수 작은 꽃은 지나치기 십상으로, 그렇게 10여 년을 자연스레 외면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방문객인 내가 보리수에게 해 준게 하나도 없음에도 매해 따는 수고에 비해 먹을 게 없다고 툴툴거리기만 했으니,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방문객의 이런 태도가 꽃의 입장에서는 어이없고 무척 억울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보리수나무는 해마다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특별히 연로하여 부실해진 육신으로 고달픈 텃밭 주인에게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행복을 선사하니 어찌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 천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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