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노모와 꽃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내게 당부하시는 말씀이, '내가 죽어도 이 집에 봉숭아와 분꽃, 백일홍은 매해 필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하신다.
이유인즉, 내가 너랑 미국 여행할 때 토마스 제퍼슨 생가의 식물원이나 듀퐁 정원, 빌트모어 저택 등 여러 군데를 다녀봤지만, 봉숭아와 백일홍, 분꽃을 본 기억이 없는데, 우리네 주변에 있는 흔한 꽃이지만 한국에만 있는 것이 분명하니(실제로 그런 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가 길이길이 잘 가꿔 보존해야 된다는 말씀이셨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을 생생히 겪어 오신 분인지라 국가에 대한 감사와 경외심이 대단하신데, 지금도 국경일에는 곱게 보관한 태극기를 정성껏 매다시는 분이기에 그 당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작년에는 흔하던 봉숭아가 한 포기도 나지 않아 걱정하셨는데, 올해는 봉숭아 싹이 여기저기에서 나고 있다며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구부러진 허리로 새싹을 캐서 정원 한쪽에 가지런히 옮겨 심으며 하시는 말씀이 난 세 포기면 되니, 나머지는 꽃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내면 좋겠다 하신다.
마침 주변에 그런 분이 계셔서 분꽃, 봉숭아, 백일홍과 메리골드까지 4종을 입양보내게 되었다. 보내는 분이나 받는 분이 모두 식물에 진심이라 기꺼이 입양 중개와 배달을 했는데, 입양 간 식물들이 어여쁜 화분에 심긴 사진까지 받게 되니 감개 무량하다.
비록 아무데나 버려도 아까울 것 없는 흔한 식물들이지만, 어르신의 애국(愛國)의 마음까지 담아 입양 보낸 곳에서 사랑을 듬뿍 받아 마침내 화려한 꽃을 피워 그 가족과 이웃에게 작은 사랑과 행복, 애국(愛國)의 마음을 전달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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