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202

원더풀 !!! 텃밭 꽃들

아침 저녁의 선선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이 일품인 9월의 어느 날. 엄마 텃밭의 여기저기에서 이쁨을 뽐내는 꽃들... 어라! 작은 나무 같던 취나물 줄기 끝에 흰잎의 꽃이 활짝 피었네... 꽃의 자태가 어찌나 여리여리한지 귀여운 어린 공주같다. 척박한 돌밭이지만 줄기를 올곧게 세우려고, 거칠고 투박해지도록 뿌리가 감내한 고통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원더풀!!! 원더풀!!! 장독대 옆에는 가지가 두 대 서 있는데, 작은 가지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부끄러운 듯 하늘 향해 얼굴을 돌리지 못하는 연보라색 가지꽃을 보려고 땅에 엎드렸더니, 가지꽃의 속얼굴과 함께 툭 트인 푸른 하늘이 눈에 가득하다. 늘 땅을 향해 숙이고 있던 가지꽃이 당당했던 이유가 하늘이 언제나 자신을 감싸고..

텃밭제 나물 뷔페

비바람에 울타리에서 떨어진 중늙은이 호박 하나, 가지 4개, 고구마 줄기 한 묶음, 작년 겨울에 거둬들여 신문지에 싸 두었던 마지막 김장 무 하나, 나무처럼 자란 뻣뻣한 취나물 잎새 그리고 더위에 웃자란 뻣뻣한 상추 잎으로 근사한 채소 뷔페 상을 차렸다.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반찬으로 먹어도 되고, 비벼 먹어도 되는 나물 차림상은 10년 넘게 엄마 텃밭을 방문해 온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상급이다. 채소값이 금값인 요즘에도 채소 걱정없이 즐기는 소박한 나물상. 엄마의 텃밭 덕에 채소 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나와 남편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근사한 한상 차림이다. 그릇에 나물을 담고, 남편은 고추장에, 나는 된장고추다데기를 넣어 취향대로 색다른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한 끼. 강렬한 폭염도 함께 먹었다.

호박 정글(jungle)

한 열흘, 폭우가 쏟아지더니, 엄마의 텃밭이 정글로 변했다. 그중, 가장 힘이 센 녀석은 호박. 울타리는 물론이고 감나무 밑의 잔디 자리와, 하다못해 장독대 및 장미화단까지 온통 호박 넝쿨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넝쿨이 얼마나 힘이 센지, 향나무 줄기를 타고 그 위의 보리수나무 끝까지 올라타 그냥 놔두면 나무, 꽃 심지어 다른 채소들까지 목이 졸리고 몸이 조여 햇빛은 고사하고 숨을 쉬지 못해 죽게 생겼다. 봄에 구덩이 4개를 만들어 호박씨 몇 개 심으셨다는데, 연로하신 주인이 손을 보기도 전에, 쏟아지는 물폭탄에 신나라 하며 사방으로 줄기를 뻗어간 모양이다. 텃밭 집사(?)인 남편이 보다 못해 호박 넝쿨을 치우는데, 뻗은 줄기가 얼마나 뻣뻣한지, 온몸에 땀을 쏟아내며 사투를 벌인다. 호박 넝쿨이 치워진 ..

여름 채소...맛.맛.맛.

채소 반찬은 가격에 비해 조리 품이 많이 들어 힘들고, 고기나 생선 요리처럼 화려하지 않아 빛이 나지 않는 편이라, 요새처럼 바쁘고 드러나는 것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그리 각광받지 못하는 재료다. 게다가, 반 조리품들이 널린 세상에서 굳이 텃밭에서부터 재료를 들여와 밥상까지 올리는 어려운 과정보다 쉽게 구매해 맛있게 한 끼 해결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요즘 세상에 맞는 가치관일 수 있겠다 싶지만, 텃밭에서 따 온 여름 채소들을 바로 조리해 먹으면 입 안에 퍼지는 담백하면서도 달큼하고, 매콤하면서도 향긋해 튀지 않고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맛에 취해 밖의 음식이 점점 멀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13년째 매주 엄마 텃밭을 방문해 텃밭제 제철 채소로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지금 내가 그렇게 되었다..

혹시 취나무? 헐...

엄마 집 뒤란의 자갈밭에는 자생 머위와 취나물이 자리다툼을 하는데, 언제나 이기는 쪽은 머위다. 머위는 일단 잎과 줄기가 크고 생존 능력이 탁월해서 한국 농촌의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자생 식물인데, 어쩌다 머위 밀림으로 변신한 뒤란이 정신없어 머위를 다 잘라버리셨다는 엄마 말씀에, 속으로는 에구, 아까워라. 머윗대...ㅠㅠㅠ 하지만, 얼마 안되어 또다시 머윗대가 올라올 테니 아쉽진 않다. 재밌는 건, 주인 덕에 머위 밀림이 사라지고 나니, 슬슬 기 펴고 일어난 녀석이 있으니, 바로 취나물이다. 지난주, 엄마 말씀. '네가 안 뜯어가서 뒤란에 취나물이 난리가 났다...' 얼른 일어나, 뒤란으로 가니, 정말 난리 난리... 이게 취나물이야 아님 취나무야? 헐... 넓은 머위잎 아래 다소곳이 앉아있던 ..

고구마줄기 덕에 해변삘(feel)^~^

지금은 고구마 줄기 전성시대! 고구마 줄기를 솎아주지 않으면 땅 속의 고구마가 실리지 않는다고 한 걱정이신 엄마. 지난 주도 뜨거운 한낮을 피해 오후 4시 경부터 남편과 함께 웃자란고구마줄기를 자르는데 끝도 없이 나온다. 봄에 모종 100개를 심어 30개 정도는 가뭄으로 죽고 남은 70개 정도가 비 한번 맞더니 얼마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껍질 까기는 고사하고 줄기와 잎만 뜯는데도 밤 8시까지 끝이 나질 않아 나머지는 큰 부대에 담아 집 근처 사는 지인 권사님께 던져 놓고, 정리된 것만 한 주먹 씩 묶어 교회 찬양대 식구들에게 골고루 나눠 드렸다. 엊그제, 어깨 수술 후 3개월 만에 처음 나간 수영장에서 지인들이 묻는 말, '그래도 해변은 다녀오셨나봐요' '엥? 이거 지난 주말에 너무 더워 소매없는 옷을 ..

고구마줄기 전성시대(?)

얘~ 비 한번 오더니 고구마 줄기가 무성해졌다. 어쩌냐? 엄마~ 뭘 어째요? 가서 솎아야지... 근데, 나 혼자 못해요~ 나도 나 혼자 못한다~ 그럼 같이 합시다~ 고구마밭 속에는 모기가 많아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곤충이 모기인 나는 전투태세를 하고 줄기를 잡아당겨 최대한 밭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줄기를 하나씩 꺾어 내는데, 엄마는 모기도 타지지 않으신 데다 일하는 손이 어찌 빠른지 줄기 훑는 속도가 나의 2배 정도. 허리가 굽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 한 곳에 앉아 하시는 일은 무척 빨라 껍질 까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지난 주말, 구름이 걷히며 갑자기 들이닥친 햇빛 아래서 그렇게 둘이 앉아 손톱 속에 땟물이 끼도록 고구마 줄기 훑고, 껍질 까서 큰 봉지로 하나 마련한 고구마 줄기. 혼자 ..

사위는 맥가이버~

혼자 왔니? 같이 왔어요... 왜요? 뭐 손 볼 게 있어요? 토요일마다 엄마랑 나누는 첫인사다. 텃밭의 텃 자도 몰랐던 사람인데 엄마 집을 주말마다 10년 이상 방문하면서 이제는 엄마 집 집사(執事)가 다 되었다. 지난 주말, 유독 뜨거웠던 대 낮에 감나무에 벌레가 아직도 있다면서 약을 쳐야 한다고 엄마 몸뻬 바지 입고 나서는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신 듯한 엄마 표정. 잠시 들어 와 목욕하고 나왔는데 금세 어디서 뚝딱 소리가 나 보니, 강풍에 대문이 비뚤어져서 겨우 닫았다시는 엄마 말씀을 기억하고 대문 손을 보고 있다. 저녁 먹고 나서는 이제 미싱 수선 시작. 91세이신 엄마가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기계가 재봉틀인데, 84년 생 미싱이 모터가 낡았는지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해 지난주부터 미..

고구마꽃 보신 분 ?????

너 고구마꽃 본 적 있니? 텃밭에 고구마꽃이 지천이다~ 엥? 고구마도 꽃이 펴요? 그러니까... 90 평생 고구마 줄기에 꽃 핀 것을 처음 봤다~ 후다닥 텃밭으로 내려가 요리조리 살피니, 이파리 밑에 숨어서 활짝 피어 있는 고구마꽃이 엄마 말씀대로 지천에서 웃는다. 꽃 모양은 울타리 타고 올라가는 메꽃 비슷한데 가운데는 진한 분홍, 바깥으로 연한 분홍의 고운 색을 입은 녀석들.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100년에 한 번 정도 피는 꽃으로 꽃말은 '행운'이란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에도 나오는 얘기라고 한다. 이게 길조냐? 흉조냐? 물으시는 엄마께, 무슨 흉조~ 길조지요~~, 금세 얼굴이 펴지신다. 엄마~ 얼마 전에는 시들시들하던 행운목에서 꽃도 피고... 암튼 엄마~ 다 좋은 일이에요~ 일부에서는 ..

색(色)의 향연(香煙)

여름이 좋은 건 햇빛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총천연색 꽃들을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샛노란 달맞이꽃 울타리 아래 키 작은 돗나물꽃이 별처럼 반짝이고, 듬직한 꽃을 낸 백년초가 씩씩하게 가지를 뻗어간다. 서로 다른 맛의 노랑꽃들이 사이좋게 피어 있다. 노랑 옆, 두 화분에 분홍꽃 2 종류가 환하게 웃는다. 햇빛따라 피고 지는 재래종 채송화와 서양 채송화다. 쨍쨍한 햇빛 아래 보석같이 빛난다. 아 ~ 여기는 진한 주황. 손가락 선인장 머리에 주황색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 피었다. 싱싱한 나리꽃도 정원 한쪽에서 하늘 향해 나팔을 불고. 뜨거운 날. 비가 오지 않아 속이 타는 텃밭 채소들 옆에서 아름다운 색(色)으로 향기를 뿜으며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노랑, 분홍, 주황 등의 현란한 색(色)으로 들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