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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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손녀와 생활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새로운 음식 먹이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도 싫어하고, 생선도 갈치살과 삼치살만 먹고, 고기에는 영 관심이 없는 데다, 구운 김에 싸서 먹는 밥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칼국수나 파스타는 잘 먹지만 늘 면만 먹일 수도 없고, 반찬이 없으면 밥만 먹기도 해 고민이 많았는데, 같이 생활한 지 2달이 넘은 지금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결코 먹을 생각도 않던 딸기는 폭풍 먹방을 찍어도 될 정도이고, 포도나 오렌지도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게 되었으며, 계란을 넣은 김밥도 1줄을 먹고, 심지어 콩나물 대가리만 먹던 아이가 지금은 콩나물에 생선살, 시금치, 당근, 생오이채, 김가루를 뿌려주면 간장과 참기름으로 비벼 한 사발을 먹는다. 더구나..

가족으로 ~ 2024.05.02

엄마처럼~

누가 돌미나리를 많이 가지고 왔는데, 깨끗이 다듬어 놓을 테니 교회든 급식소든 가져가 사용하라셔서 오후 출근 전에 급히 다녀왔는데, 볕이 좋아 마당에 나와 잡초를 뽑고 계시는 엄마를 뵈니, 눈물 나게 감사하다.  만으로 구십이 넘은 후로는 기력이 쇠해지시는게 보여 바람 불면 감기 걸리실까, 누워 계시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실까 늘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꽃들을 살리는 특별한 재주 덕에 엄마 집 화분들은 대부분 죽을 위기를 넘긴 것들인데, 볕 좋은 오늘도 죽을 뻔한 증손녀의 화분을 보살피고 계셨다. 가져간 반찬들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거실 테이블 위에 지난주와 다른 책이 펼쳐져 있었다. 남동생이 출장 가기 전 엄마 보시라고 갖다 드린 5권의 책 중 마지막 한 권을 독서 중이라 하셨다. 귀가 어두워..

가족으로 ~ 2024.04.25

함께, 좋다^^

활짝 핀 튤립 옆에 서서 손으로 꽃을 만들어 보이는 손녀. 그 옆의 어린 동생이 누나를 따라 한다. 너희들이 꽃이다. 누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2층 꼭대기에 올라가 발 끝을 세워 사방을 둘러보며 깔깔거리는 꼬꼬마 두 손주들. 짐차에 동생을 태우고 교회 잔디를 힘차게 돌아다니는 누나. 누나와 동생, 함께라서 보기에 참 좋다. 명자나무 가지에 달린 2송이 꽃도 함께여서 더 예쁘다. 나도 남편과 함께여서 참 좋다. 내가 애들을 씻기면 받아서 뒷마무리해주고, 남편이 한 아이 공부시키는 동안, 난 다른 아이 밥 시중들고, 내가 애들에게 바람 잡으면 남편은 장단을 맞춰 주고, 내가 애들 잠자리 준비하면 남편은 애들 치카해 주고, 내가 먹이고 입히고 씻기면 남편이 애들 등원시켜 주고, 내가 아파 꼼짝을 못..

가족으로 ~ 2024.04.11

황혼(?) 육아

여러 사정으로 몇 달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된 5살, 3살 두 남매 손주들과 함께 생활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상처가 생기면 어쩌나 싶어 각별히 신경 쓰며 보살피고 있는데, 생각보다 아주 잘 지내고 있어 한편으론 고맙다. 잠자리부터 시작해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일 외에도 등원과 배변 훈련, 한글 익히기, 뭐든 스스로 하는 습관과 적당한 놀이 등을 통해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 새롭고 재미있고 행복하길 바라며 남편과 함께 힘을 다하고 있다. 식성이 다른 두 아이의 원하는 식사가 대부분 각각이라, 오늘 아침도 손녀는 구운 식빵에 잼을 바르고 설탕을 살짝 뿌려 두유와 함께 먹었고, 손자는 요플레, 건포도, 구운 식빵 조금 그리고 사과로 식사를 했다. 젊은 시절 딸내미 머리는 묶..

가족으로 ~ 2024.04.04

웃음 꽃

혼자 사시는 노할머니집이 두 명의 증손주 등장으로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초등 교사 출신인 증조할머니인지라 애들과 노는 건 베테랑. 문제는 귀가 어두워 동문서답을 하시는 것. 5살 손녀가 노할머니께 질문할 것이 많아 지지굴대는데, 노할머니가 딴 말씀을 하시는 게 어째 이상한 모양이다. 상황을 알아듣게 얘기했더니, 그럼 노할머니께 얘기할 때는 큰 소리로 말해야겠단다. 똘똘한 녀석.ㅎ 공주 그림책을 펼쳐서 노할머니께 이름도 가르쳐 드리고, 할머니 허리가 왜 구부러졌는지 묻기도 하고, 식사 때에는 서로 노할머니 옆에서 먹겠다고 자리를 바꾸는 증손주의 모습에 노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 늙으니 웃을 일도 별반 없다시는 구순 노모께서 90년 차이가 나는 증손주들의 재롱 덕에 오랜만에 크게 웃으셨다.

가족으로 ~ 2024.03.21

온통 내 세상^^

텃밭도 기지개를 켜는 따뜻한 봄날, 마당을 가로질러 맘대로 소리 지르며 뛰노는 아가들의 발소리가 무척 명랑하다. 매일 집 안에서 뛰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애들에게 실컷 뛸 수 있는 증조할머니 집은 천국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텃밭 돌보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환한 표정에 사방이 더욱 밝아진다. 앵두나무를 자르려는 할아버지 옆에 벌러덩 앉아서 왜 자르냐는 3살 손자의 물음에 나무가 죽어서 자른다 했더니, '앵두나무가 슬프겠어요...'하는 어린 손자. 측은지심의 마음을 평생 간직하길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 자세히 살펴보면 텃밭과 꽃밭 사이에 고개를 내민 여러 새싹들이 보이는데, 5살 손녀가 무척 진지하게 바라본다. 혹시, 땅 속에서 삐죽삐죽 올라오는 봄 새싹 소리를 귀담아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엊그제 ..

가족으로 ~ 2024.03.19

아주 특별했던 하루

2024년 내 생일 전날, 5살 손녀가 침대에서 나오며 '한 번만 더 자면 할머니 생일이다~'한다. 어떻게 기억했지? 며칠 전 알려준 건데...ㅎ 근데 할머니 생일에 뭘 먹을까? 했더니,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줄줄이 읊는다. 우동국수... 돈가스... 젤리... 아이스크림... 딸기... 그럼 갈 곳은 이미 정해졌네.ㅎ 마침 생일이 주일이라 영어예배를 섬기고 나오는데, 손녀 왈, '할머니 이 쪽으로 오지 마세요~ 보면 안돼요...' 뭐지? 주변 분들이 내게 다가와 오늘 생일이냐고 묻는다. 아하... 손녀가 영어 어린이 예배 들어가서 다 소문냈구나 싶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저기 접은 노란 종이를 내민 손녀. 어린이 영어 예배 꼬맹이들이 합작해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생일 카드다!!! 저녁 식사 ..

가족으로 ~ 2024.03.06

할머니 식당

'여기는 할머니 식당이에요~~ 으음~ 맛있어~ 밥이 참 맛있어요~' 작은 김 위에 당근과 시금치, 오이채와 갈치살을 올려 둥글게 싸서 먹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5살 손녀의 말이다. 옆에서 계란과 갈치살, 콩나물로 밥을 먹던 3살짜리 손자도 느린 말투로 '나도... 할머니 식당 손님이에요... 밥이 너무 맛있어요...' 한다. 내가, '식당에 왔으니 돈을 내야죠~ 돈이 없으면 뽀뽀가 돈입니다~' 했더니, 두 녀석이 쪼르르 달려와 양 볼에 뽀뽀를 해준다. 남편이 한 술 더 떠, '할머니 식당 밥이 맛있는 사람 손들어~~~'하니, 두 녀석들이 모두 손을 번쩍 든다. '그럼 지금부터 더더더 맛있게 먹자~~' '네~~~~' 이제는 후식 시간. 딸기를 먹지 않는 손녀를 위해 사과, 배, 딸기를 잘게 잘라 큰 접시에 ..

가족으로 ~ 2024.03.04

밤 껍질 벗기다가...

저장해 놓았던 밤에 싹이 나려 해 부랴부랴 씻고 삶아 껍질을 까다 보니 손가락이 칼자루에 눌려 무척 아팠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내 기억 속 40대의 엄마는 사업 실패로 방황하고 계셨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을 지키시느라 하루 24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어 사셨는데, 커가는 5남매와 연로하신 어른들을 모시느라, 밖의 일을 할 수 없어 시작했던 것이 밤이나 은행 껍질을 벗기는 일로, 매일 1말 정도 까기를 10여 년 이상을 지속하셨던 것 같다. 수고비가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자식들 교육비 등으로 사용하고 또 모아놓으신 게 지금 엄마의 쌈짓돈이라 하셨는데, 여름에는 마당에, 겨울엔 방 안에 놓여 있던 밤과 은행의 잔재들. 속 모르는 우리들은 냄새난다고 싫은 소리도 했었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

가족으로 ~ 2024.02.14

한 달 살이

지금 우리 집에는 2013년생부터 2023년생 갓난아기까지 6명의 손주들이 모여 한 달 살이 중이다. 갓난아기야 젖만 먹지만, 나머지 5명의 어린이들의 끼니만 해도 때마다 챙기려면 여간 분주한 게 아닌데, 식성이나 취향도 모두 달라 아침에 뭐 먹을래? 물으면 모두 다른 것을 이야기하니, 어제 아침도 계란밥 2명, 참치김치볶음밥 1명, 당근나물에 김 넣고 비빔밥 1명, 김가루 주먹밥 1명의 주문을 받아 그대로 해주었다. 과일 먹자 그러면 누구는 사과, 누구는 배, 또는 귤, 껍질 깐 포도... 등등 모두 나뉘어서 살짝 정신은 없지만, 뭐 그쯤이야 해 줄 수 있을 때 해 주자 싶어 어지간하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다. 엄마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할머니라 가능한 너그러움이라 할까? 오늘 점심은 한우 불고기감 재..

가족으로 ~ 20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