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

밤 껍질 벗기다가...

신실하심 2024. 2. 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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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해 놓았던 밤에 싹이 나려 해 부랴부랴 씻고 삶아 껍질을 까다 보니 손가락이 칼자루에 눌려 무척 아팠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내 기억 속  40대의 엄마는 사업 실패로 방황하고 계셨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을 지키시느라 하루 24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어 사셨는데, 커가는 5남매와 연로하신 어른들을 모시느라, 밖의 일을 할 수 없어 시작했던 것이 밤이나 은행 껍질을 벗기는 일로, 매일 1말 정도 까기를 10여 년 이상을 지속하셨던 것 같다.
 
수고비가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자식들 교육비 등으로 사용하고 또 모아놓으신 게 지금 엄마의 쌈짓돈이라 하셨는데, 여름에는 마당에, 겨울엔 방 안에 놓여 있던 밤과 은행의 잔재들. 속 모르는 우리들은 냄새난다고 싫은 소리도 했었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더러 까라는 말씀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손가락은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히고, 손가락 마디가 틀어졌지만, 초등 교사 출신인 엄마는 우리에게 '일 할 수 있는데 놀고먹는 사람이 가장 천한 사람이다'라시며, '일에는 귀천이 없다. 빌어먹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들'임을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셨는데, 어쩌면 칼날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딱딱한 밤과 은행의 껍질을 벗기면서, 자신의 마음에 굳어진 옹이들도 하나씩 떼어내고, 한편으로  자식들이 무탈하게 자라기를 끊임없이 기도하며 버텨낸 세월이었을 터.

 
이렇게  젊은 시절을 험난하게 지나온 엄마의 말년은 스스로 천국 같은 삶이라 하시니,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이 새로워진(고후4:16) 인생으로 빚어진 엄마는 자식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다.

 

이런저런 옛날 생각을 한참 하다, 나 먹자고 깐 딱딱한 밤 껍질 때문에 잠시 싫은 맘이 들었던게 부끄러워, 슬며시 하나님께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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