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아끼고 다시 쓰고 고쳐 쓰시던 노모의 손은 매직 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최초 매직은 네 살 정도 때 미군 군용 담요로 만들어주신 검정 코트. 물자가 귀했을 때이기도 했겠지만 워낙 물건 아껴쓰기의 선수셨던 엄마. 그 때 이후로도 엄마의 원피스가 내 브라우스로 변신하기도 했고 뒷꿈치가 해진 할머니 털 스웨터는 우리들의 겨울 모자와 목도리 또는 겨울 교복치마 속에 입을 따뜻한 속바지로 뚝딱 변해 있었다.
어린 마음에 새것을 사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 나이 되서야 엄마의 매직 손이 고단한 삶을 지탱해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25, 6 년 전 유학 후 귀국해 산 방석커버를 여태 사용했는데, 너무 낡아서 퇴색도 되고 커버 윗면에 구멍이 나 교체해야할 지경. 나 역시 그 엄마의 그 딸인지 물건에 별 욕심이 없고, 또 한 번 산 것은 유행과 상관없이 못 쓸 때까지 사용하는 모전여전병(?)에 걸려 방석커버의 지퍼를 발라내 새 헝겊을 사서 커버를 만들까 여러 궁리를 하던 참에 엄마께 여쭤볼 맘이 생겼다.
엄마 집을 방문한 주말에 방석커버 얘기를 했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지퍼가 붙여진 뒷면은 깨끗하니 앞면만 교체하면 되겠네~' 하신다. 난 방석 열장 커버 헝겊을 사려면 몇 마를 사야할까? 지퍼를 뜯어내려면 엄청 시간 걸리겠네~ 하고 갔었는데.... '얘~ 새 천 살 필요가 뭐 있니? 집에 있는 천들 가져오면 적당한 것으로 윗판만 바꿔 만들면 되지~' 와우!!! 갑자기 머리가 맑아진 느낌.
그 후로 2주일 후, 헌 방석커버가 새 옷을 입고 드디어 나타났다. 지금부터 20년 정도는 너끈히 사용할 수 있겠다. 구순 노모가 그 때까지 살아계실지 모르겠으나 난 방석을 보며 새록새록 엄마의 체취를 느끼겠지.
지난 주말엔 남동생이 엄마집을 방문하며 바지 수선할 것을 들고 왔다. 엄마는 바로 재봉틀 앞으로 직진하시고. 허리가 꼬부라져 서서 하는 일엔 힘겨워하시나 앉아서 하는 일엔 조금도 주저함이 없으시다. 게다가 자식 일이라면 열 일 마다하지 않으시는 울 엄마.
엄마와 함께 산 세월이 벌써 육십년이 넘어선 지금도 이래저래 구순 노모의 매직 손은 아직도 열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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