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우아한 삶이란?

신실하심 2019. 10. 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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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자주 갖는 삶이 아니지만, 어쩌다 오랫만에 지인들을 만나면 으례 물어보는 것이 어찌 지내시냐이다. 내 나이 또래의 대부분이 퇴직을 하고 자녀들 출가를 시키고 있는 중인 분들이다.


' 뭐, 그럭저럭 지내요.'

' 별일없이 그냥 지내는게 감사한거죠 '

' 어디 크게 아픈 데는 없는데 쉽게 피로해 지네요.'

'손주들이 너무 예뻐서 한것 봐 주고 나면 며칠은 쉬어야 피곤이 풀려요.'

' 애가 아직 짝을 못 찾아 걱정이에요.ㅠㅠㅠ'


그럴 때 내가 가끔 답으로 한 말 중 하나가 '예전 3,40대 생각엔 50 넘고 60이 되면 무척 우아하게 살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아보니 그리 우아하지 않네요.ㅠ' 였다. 뭐가 우아한 삶이지?  아마도 내 속에 담고 있던 삶의 우아함이란 60대에도 몸은 3, 40대 같이 젊고, 넉넉한 재정으로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아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삶을 잘 살아 나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남편 역시 60대의 나이에도 팔팔하게 사업에 매진하고 게다가 예쁜 손주들을 보면서도 결코 피곤치 않는 건강한 육체. 그래서 보여지는 삶과 누리는 삶이 상위권 안에 드는 것.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우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살짝 불행해 하고 있었나? 이런 삶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어제 교회 야외예배에서 봉사 시간이 달라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던  아주 친한 권사님과 잠깐 이야기할 시간이 있어 서로 안부를 묻는 중에 지난 달부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영양사 일이 어떠냐는 질문에 엊그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오후에 일하는 곳은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들에게 저녁 급식을 제공하는 한 복지시설단체이다. 영양사 직분이라 주방에서 조리를 하지는 않지만, 주방 전체를 관리하고 재료 주문 및 관리와 급식 메뉴를 결정하고 위생 관리를 담당하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다툴 가능성이 있는 불고기나 코다리찜 또는 닭목음탕 같은 메인 메뉴의 배식을 맡아 하고 있다. 그 날은 평균 200인 정도 급식 받으러 오는 날이라 그에 맞게 소고기불고기를 준비해 배식하고 있는데, 줄이 끝나갈 즈음 갑자기 한 10여 명이 몰려왔다. 남은 고기가 20여 명 분 정도인데 이걸 30인분 정도로 나누려면 앞에서 배식받은 분보다 1/3 정도는 적게 나눠야할 판. 기다리는 급식자들에게 서로 조금씩 나눠서 함께 먹자고 양해를 구하고 배식하고 있는데, 먼저 배식받았던 어떤 분이 다 먹고 밥이 조금 남았다며 고기를 더 달라고 식판을 내민다. 공손히 오늘은 좀 어렵겠다고 말씀드리는 순간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상욕을 하시는게 아닌가? 순간 머리가 아득했다. 조금 더 하면 식판을 내게 던질 기세. 어찌어찌해 위기를 모면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마지막 급식자까지 배식을 끝낸 순간 아까 들었던 어마무시한 욕을 기억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분의 얼굴조차. 이런게 망각의 은혜던가?


이제 겨우 한 달 근무한 이 곳에서 난 매일매일 생전 보도듣도 못했던 인생들을 만난다. 그 어느 누구도 없고 싶어서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테고, 노숙이 좋아서 노숙하고 있는 분도 없을텐데. 깔끔하게 갖춰입고 오시는 분, 온갖 장식품을 몸에 달고 오시는 분, 한쪽 몸을 쓰지 못해 겨우 오시는 분, 돈 100원 내는 급식비도 아끼려고(?) 10원짜리 동전 내고 시치미를 떼시는 분, 고기 반찬에 채소를 적게 넣었다고 꾸중하시는 분, 늘 맛있게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는  분, 순서를 새치기 하시는 분, 많이 드렸어도 늘 더 달라는 분, 식판에 담긴 모든 음식을 가져온 통 안에 모두 집어넣고 소화 안되서 집에 가서 먹을거라는 할머니....  그 분들의 사정이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엔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있고 그 속에는 나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들고 더 없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지금 내가 사는 삶이 내게는 가장 우아하고 감사해야 할 삶인 동시에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할 삶인 것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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