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도께서 후원하신 냉국수용 채소육수 20박스.
날이 추워지기 전에 사용하기 위해 지난 주일 점심 메뉴를 냉국수로 결정했다.
하지만, 주방 총괄로서 밥 위주의 식사에 맞춰 세팅이 된 교회 주방에서 600인분 국수를 삶는 작업이 만만치 않은 데다, 국수 한 그릇만 제공되는 식사라 국물과 웃끼의 맛이 잘 어우러져야 맛있는 한 끼가 되니, 한 주간 내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하나씩 준비하였다.
선임 만나부장 2분께 소면 삶는 작업을 도와주십사 부탁을 하고, 토요일 오전에 냉국에 얹을 웃끼로 오이절임과 무절임, 배채와 삶은 계란을 준비하였는데, 말이 쉽지 오이 400개, 무 3박스(20킬로/박스)를 씻고 썰어 각 재료에 맞게 적정 비율의 양념에 절이고 물기 없이 짜거나 단촛물에 버무리고, 12판의 계란을 삶아 껍질을 까고, 배 50개를 손질해 냉장하는 과정은 남녀 일꾼 8명이 쉬지 않고 해도 정오를 훌쩍 넘길 만큼 작업량이 셌다. 게다가, 맛까지 좋아야 하니 주방 총괄로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주일 새벽 6시, 남편(그야말로, 나 대신 힘써주는 고마운 몸꾼)과 함께 교회 주방에 들어가 봉사자들이 오기 전 마무리 못한 일을 하는데 점점 더 긴장이 된다. 교회 주방이 열린 후 처음 시도하는 냉국수라 반응이 어떨지... 그 많은 양의 국수를 어떻게 삶아내야 할지... 삶아 놓은 국수가 심각하게 불지는 않을지...
예배를 드리면서도 성도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는 기도외에 다른 기도는 할 수 없었다.
오전 10시 반. 봉사자들이 먼저 시식을 시작하는데, 그들의 식사평이 자못 궁금해 자꾸 표정을 살피는데 다들 맛이 좋단다. 휴.. 일단 한 시름을 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11시 반 점심 식사 시작. 성도들이 점점 배식대 앞으로 몰려오니 오랜만에 시험 성적표 받는 기분이 드는데, 남녀 봉사자 십 오륙명이 팀을 나눠 350인분 전기국솥 2개에 국수 삶는 솥에 공급할 물을 끓이고, 100인분 전기국솥 1개와 가스솥 2개에서 국수 10인분 정도씩 계속 삶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아진 국수를 불지 않게 찬물에 열심히 씻어내고, 또 한쪽에서는 국수를 1인분 용량으로 말아서 채반에 올리고, 배식대 앞에서는 국수 놓은 채반을 교체하는 동안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식사를 마친 어느 분이 내게 '겉모양은 평범한데 정말 맛있었어요. 제 '인생 국수'에요. 진짜로요...' 하시는데 그간의 피로가 사르르 녹으며 긴장이 풀렸다.
어렵고 힘든 하루였지만, 주방 봉사자들의 기도와 수고에 하나님의 지혜의 맛까지 담긴 냉국수 한 그릇을 통해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식탁의 비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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