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신실하심 2021. 2. 3. 17:13
728x90

딸에게 일이 생겨 돌 반 되는 손자를 하룻 저녁 데리고 자게 되었다. 코로나 덕분에 꼼짝없이 집에서 엄마와만 지내온 터라, 어미 없이 잠을 자 본 적이 없어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촌 누나들을 무척 좋아해서, 집 근처에 사는 누나 2명이 '애기 입에서 엄마를 찾는 일이 없도록 잘 데리고 놀라'는 아들의 미션을 받고 차출되어 우리 집에서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와 누나들이 번갈아 끌어주는 이불 기차도 타고, 누나들의 색종이 놀이도 슬쩍 껴서 여기저기 종이 잔재를 흩날려놓으며, 지 엄마는 전혀 찾지 않고 깔깔 꼴꼴. 가끔 엄마 생각이 나면 누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정도(?). 누나들과 같이 앉아 식기도 후 밥도 잘 먹고... 

그런데 잠자리부터는 엄마 앉아줘 하며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동요를 틀어주었더니, 집중해 듣다가 또 엄마를 찾는다.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나 엄마의 상황을 아주 간단히 얘기했더니 할머니 안아 줘 한다. 손자를 앉고 서성이며 동물 얘기를 해 주는 동안 스르르 잠이 들기에 자리에 누였다. 밤새, 손자가 잘 자도록 토닥이며 딸애 일이 잘 돼서 오길 기도하다 보니 잠 잔 시간은 겨우 두세 시간. 문득 거의 40년 된 옛날 일이 떠오른다.

 

첫 애가 지금의 손자 나이만한 때에,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가면서, 큰 애를 잠시 한국에 놓고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싶은데, 아마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을 터였다. 지금처럼 페톡이나 영상 통화도 없던 시절, 한국에서 보내 준 아이 사진을 보며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친정엄마의 편지에 '너도 네 새끼 보고 싶지? 나도 내 새끼 보고 싶다`'고 쓰신 글귀가 아직도 뚜렷이 기억나고.

 

내 엄마도 그 당시 지금의 나와 같은 맘으로, 에미와 잠시 떨어진 어린 손자가 다치지 않고 잘 지내기를, 그리고 유학 간 딸의 학업이 잘 진행되도록 엄마의 고단함은 묻어두고 겨우 잠든 손자를  토닥이며 무수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을 거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데려오지 못해 보고픈 아이 생각만 했지, 엄마를 보고파하는 손자를 힘들여 키워주시는 친정엄마의 고단함과 간절함은 많이 헤아려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생각이 든다. 늘 생각하는거지만, 내가 엄마 나이 되어서야 그 나이의 엄마를 알게 되니, 언제나 불효하는 내가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직 친정엄마가 살아계시니, 이번 주말엔 그 때의 돌봐주심을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안아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