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텃밭 무청 시래기 된장국

신실하심 2023. 11. 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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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있던 주중 어느 날, 무는 입동 전에 뽑아야 한다는 장모님의 말씀을 기억한 남편이 금요일까지는 밤 온도가 영상인데 토요일에 영하로 내려가 텃밭의 무가 얼지 모르니 금요일 밤에라도 엄마 집에 가서 무를 뽑아야 한단다.

 

안 그러면, 독감 뒤끝으로 기운이 많이 달린 장모님이 직접 무를 뽑으시다가 큰 탈 나신다... 운전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차에서 자라... 등등 말씀이 많다.

 

퇴근해서 바로 엄마 집에 가도 저녁 8시나 될테지만 먼저 마음을 써 주는 남편이 고마워서 그대로 따라나섰다.

 

그날 밤 엄마 집에 도착하니, 남편의 말대로 엄마가 이미 무를 뽑고 계시는데,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시게 하고, 남편과 함께 무를 뽑기 시작했다. 남편이 무를 뽑아 오면 난 무청을 잘라 무와 분리해 놓는 식으로 두어 시간 작업을 했다. 

 

예전 같으면 무가 몇 개나 되는지 세서 오 남매에게 똑같이 나누셨는데, 이번에는 그냥 대충 비닐에 담아 지하실에 놓으라 하시는데, 많이 연로하셨구나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짠해진다.

 

그리고, 작년까지는 새끼를 꼬아 무청을 가지런히 묶어 다음 해에 시래기로 사용하도록 갈무리를 하셨는데, 이젠 그것도 힘에 겨우신 모양이라, 교회에서 한 끼 국거리로 사용하려고 무청을 거듬거듬 정리해 큰 비닐에 담아 차에 싣고, 엄마께 내일 오후에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오늘 밤에 병이 더 도지지 않으시길 바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런 사연이 있는 무청을 깨끗이 씻어 삶은 후, 찬 물에 담가 이틀간 냄새를 빼고 다시 씻어 물기를 빼 저장 보관했다가 잘게 썰어 된장에 버무려 맛을 입히고 중늙은이 호박과 함께 사골 우린 국물을 넣고 푹 끓여 600인분 교회 점심의 국으로 올렸다.

 

엄마께 조금 가져다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

'잘 끓였네... 나도 너희 교회에 무청으로 봉사한 거다...'

'예 예, 무청뿐인가요? 호박도, 고구마줄기도 다 엄마가 주신거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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