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기온이 31℃였던 광복절날, 오랜만에 약속이나 스케줄이 없어 더위도 피할 겸 남편과 함께 일찌감치 집을 나서 대전둘레산길 8구간으로 향했다.
둘레산길 12구간 중 8구간이 가장 편한 코스라는 정보도 있었고 둘레길이라 편하게 걸을 수 있겠다 싶어 선택한 곳인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인지 초입부터 산란(山蘭)이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는 데다 걸으면 걸을수록 편한 길이 아니겠다 싶은 마음에 약간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 같으면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높은 산들을 무박 1일 코스로 다녀올 정도로 걷기에는 무한 자신이 있었건만, 지금은 다리, 허리 등의 상태를 생각하며 걸어야 해서 나이 먹음을 실감하게 되는데...
안산산성에서 우산봉까지는 산길이 그런대로 걸을만 했지만, 우산봉을 지나 갑하산, 그리고 탑재고개까지 울퉁불퉁 바위돌이 지천이고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심해 지리산도 아닌데 왜 이러지 싶었다. 높이가 500여 m 밖에 되지 않는다고 얕볼 게 아니었네...
평평한 능선을 걸을 때는 시원한 바람 덕에 오길 잘했다 하고, 뾰족뾰족 바위를 타고 오르내릴 때는 괜히 왔나 싶다가도 내리막에 나무뿌리 하나 의지해 내려갈 때는 디디게 해 준 작은 나무뿌리에 고마움이 들면서 만 가지 감정들이 산세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환갑 넘어 산행하면서는 산길 15km 정도 걸으면 적당하다 생각했었는데, 이번 구간은 왕복 22km가 넘다 보니 가파른 바위길을 지나야 할 때는 집에 갈 일이 아득하게 느껴져 내가 왜 이 길을 왔나 후회가 밀려오는데, 처음 가 본 길인데 내가 이럴 줄 알고 왔나? 그렇다고 산에서 노숙을 할 수도 없고. 힘들어도 걷고 또 걷다 보면 주차해 놓은 곳까지 도달하겠지 마음을 먹고 복잡한 생각은 버리고, 남편과 둘이서 그냥 말없이 걷다 보니 거의 10시간 산행의 끝에 주차된 차 앞까지 오게 되었다. 야호~~~ 드디어 차 앞이다~~~
돌아보면, 나의 인생길도 오늘 걸은 산길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로 부딪쳐 깨지기도 하고 때론 충만할 때도 있었고,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후회와 애정, 감사가 반복되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산행처럼 어떤 상황이든 주변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걷다 보니 지금의 평안함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난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부른다.
얕볼 만한 삶이란 게 있지도 않지만, 앞으로의 인생 여정 역시 여전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 텐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며 걷고 또 걷다 보면 도착할 그곳은 분명 천국일 거라 믿는다.
힘들었던 산행이었지만, 어려움에 주저앉지 않고 걷고 또 걸을 수 있어서 마무리 끝에는 뿌듯한 마음도 있다.
덕분에 엄지발톱 하나가 빠지게 되었지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