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23사순절 두이레 기도회(마26:36-27:10)

신실하심 2023. 3. 3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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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날 : 예수님과 고민까지 함께 하는 사이인가?(마26:36-41)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셔서 제자들이 자신의 고민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돌 던질만한 거리)에서 기도하며(37), 자신의 팔림에 대한 고민으로 죽게 되실 정도였는데(38), 제자들은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⓵ 예수님도 고민을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하신 분으로,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부르셨음을 기억해야 (너는 종이 아니라 너희는 친구라 하므로,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다, 요15:15 )

⓶ 친구로 사는 길은 깨어(=주의를 기울인다, 살핀다, 38절) 기도함을 통해 예수님의 고민을 알 때만 가능한데(40절), 깨어 있지 않으면 나 자신의 고민만 보이고 상대방은 보이지 않는다

⓷ ‘시험’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가는 방향으로 기우는 상태로, 깨어 있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41절)

⓸ ‘깨어 있음’으로 우리의 모든 상황이 예수 안에 있음을 알고 주님의 길을 함께 가게 되어 결국은 부활의 아침까지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주님과의 친밀함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이 주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상태가 깨어 있음으로 비롯됨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수십 년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던 시간들이 마치 학기말고사 시험지를 받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바른 답을 찾으려고 애쓴 시간들이었다면 지금은 시험지에 적은 나의 답이 맞는지를 하나씩 채점하는 시간인 것 같다. 오늘도 시험 문제 중 하나의 정답을 비슷하게 찾아낸 것 같아 감사하다. 더욱 깨어 있는 자로 살고 싶다]

 

2. 둘째 날 : 되풀이되는 기도, 달라진 시야(마26:42-46)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하신 3번의 기도는(39,42,44) 되풀이되는(=같은 말로) 기도였는데,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6:7)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⓵ ‘중언부언’은 ‘비어있는 말로 여러 가지를 덧붙인다’는 뜻으로 그 당시 이방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빈말을 되풀이한 것으로부터 유래됨

⓶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 마음, 관심을 가지고 되풀이하는 기도는 좋은 기도로, 내가 원하는 바가 있지만 하나님을 향해 진실하게 되풀이하다 보면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가 드러나게 됨(39절)

 

변화가 있는 기도가 좋은 기도이다

⓵ 예수님이 반복 기도를 하는 동안 자신이 팔리게 될 것으로 고민되어 죽을 것 같은 상태(38절)에서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으니 함께 가자’라는(46절) 결단을 하게 되는 담대함과 용기가 생기는 변화가 발생됨

⓶ 이는 반복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동안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사귐’이 생겼기 때문

⓷ 이 과정에서 제자들이 자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40,42,45절)은 동일했으나, ‘지금이 자신이 팔려가야 되는 하나님의 때인 것’(45절)을 깨닫게 되는 ‘시야의 변화’가 생겼다.

⓸ 즉 상황은 같으나 하나님의 일하심의 때를 보게 된 것

 

[물리적 기도 시간을 확보하며 치열하게 기도했던 젊은 날이 생각난다. 열심히 기도는 하는데 맞는 기도를 하고 있는 건지, 내 기도가 미신적 기도와 같은 것은 아닌지, 정말 하나님이 듣고 계신지, 뭘 자꾸 달라고만 하는 이 기도가 참된 기도인지, 그럼 어떤 기도가 좋은 기도인지 내적 질문이 많았고 그런 질문의 답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꽤 애를 썼는데, 드디어 오늘 그 답을 찾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기도, 그래서 상황의 변화는 없지만 그 뜻에 나를 온전히 맡기려는 담대함과 용기가 생기는 기도가 좋은 기도라는 것을. 오늘 하루도 이 깨달음을 품으니 행복한 시간 안에 살 것 같다. 아멘]

 

3. 셋째 날 : 파는 입맞춤(마26:47-50)

 

유다는 주님을 팔기 위해 군호를 짜고 있다(48)

⓵ 악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유다의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

⓶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에 힘을 다하자

 

입맞춤은 사랑하는(=친밀한)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예수님을 팔려는 유다가 주님께 입맞춤을 하고 있다

⓵ ‘적대’를 ‘환대’로 포장해 입맞춤(49절)을 하는 유다의 내면에는 ‘적대’가 증가해서 결국 ‘적대’가 외부로 분출하게 된다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6:45 참고)

⓶ 나 안에 품을 것이 ‘적대’인가 아니면 ‘환대와 용서’인가 선택해야 함

 

[내 안에 생긴 미움이나 적대를 바로 뽑아내지 않으면 점차 부풀어져서 결국 내 자신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되고, 어렵더라도 말씀을 의지해 용서하는 편을 택했을 때 찾아오는 평강과 생명의 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물론 이런 상태는 내 안에서만 일어났기에 주변에서는 알지 못했을 것이나, 이런 과정을 통해 죽음과 사망의 시간 대신 생명과 평강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행이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더해져 나 자신을 포함해 이웃들 모두를 성령의 힘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나머지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

 

4. 넷째 날 : 무엇을 이루려 사는가(마26:51-56)

 

잡히시는 예수님을 지키려는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⓵ 칼을 칼집에 넣어라 명령하시고 잡혀 가시면서도(=무능력하신 예수님) 제자 중 하나에 의해 베인 대제사장 종의 떨어진 귀를 고쳐주셨다(=치유의 능력을 가진 예수님, 눅22:51 참고)

⓶ 필요하다면 의지적으로 무능력을 선택하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⓷ 능력과 돈이 중요한 시대를 찾아가는 시대에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때로는 무능력을 쫓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예수님은 왜 무능력을 쫓아가셨나??

⓵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서(54, 56절), 즉, 이 땅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선함을 이루어가는 것임

⓶ 제자들은 주님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그들의 성취였다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서는(56절) 안되었는데, 이는 제자들의 계획은 예수님이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계급을 얻기 위함이었음을 보여줌

⓷ 제사장 무리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성취를 이루는 자들임(=성전에 있을 때는 잡지 않았다, 55절)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결국 나를 버리는 일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시각각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아가 빚어내는 욕망이나 계획 등을 성령께서 차단해 주시길 바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에서 예수님처럼 의지적으로 무능력을 선택해 하나님만 드러나시길 기도해야겠다]

 

5. 다섯째 날 : 일찍이 예수를 따라(마26:57-68)

 

예수가 잡힌 후 멀찍이 떨어져 예수를 따라가 대제사장 집 뜰에 앉아 있는 베드로의 마음(58)

⓵ 잡힌 주님의 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결말을 보고 싶은(58절) 악한 호기심을 가짐

⓶ 멀찍이 따라가는(58절) 그의 마음에는 아마도 ‘죄책감 또는 미안함’도 있었을 것

⓷ ‘따른다’는 것은 관계가 형성되는 대상이 있어 그 사이에 ‘친밀함’과 ‘본받음’이 나타나야 하는데, ‘멀찍이 따르면’ 그것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게 됨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 증거(59), 거짓 증인(60)을 많이 불렀으나, 증거를 찾지 못했고, 예수를 잡아 죽일 명분을 찾던 대제사장의 질문 두 가지 중 한 가지에는 침묵하시고(62-63), 2번째 질문에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말(64)했는데, 이로 인해 결국 신성 모독죄로 사형에 처하게 됨

⓵ 예수님은 논리에 탁월하심(바리새인과의 논쟁에서 늘 지지 않았음)에도 ‘때로는 침묵으로, 어떤 때는 담대한 대답’으로 반응하심

⓶ 자신이 가는 길이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고, 주님과 함께 하시는 길임을 확신하므로, 내면의 고요를 유지해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 때로는 말하심이 예수님의 하나님 따라가는 방식임을 보여줌

 

[나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삶에서 주님이 아닌 나를 입증시키기 위해 대답도 하고 때로는 침묵을 하고 있지 않는지 오늘 하루 돌아봐야겠다]

 

6. 여섯째 날 : ‘무슨 말이냐에서 알지 못하노라까지(마26:69-75)

 

베드로의 부인과 저주

⓵ 바깥뜰에 앉아 있는 베드로에게 여종 1명이 질문에는’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70절)로,

앞문(71절)에서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의 22번째 질문에는 ‘맹세하고 또 부인’함으로, 곁에 섰던 사람들이 있는 상태에서의 질문(73절)에는’저주하며 맹세‘한 베드로

⓶ 두려움이 점층 되면서 베드로의 부인(=악)도 더욱 세짐

 

베드로의 통곡

⓵ 닭 울음(74절)은 전에 자신에게 말하셨던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

⓶ 말씀이 기억 나, 자신의 죄성을 깨달은 베드로가 비통하고 애통하게(심히 통곡, 75절) 울음

⓷ 사실, 베드로가 다른 종들처럼 도망갔었다면 부인의 현장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베드로가 통곡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회복되지 못해 훗날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

⓸ 우리에게도 예수의 말씀을 듣는 장치가 있어야

 

[베드로에게 닭 울음이 회심의 장치였다면, 내게는 오가며 눈에 들어오는 자연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회심도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를 찾기도 하며 내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똑똑하게 직면하면서 몰라서도 울고 깨닫고 나서는 죄송해서 울고 그리고 감사해서 울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신없는 틈에 죄인의 길을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서는 시간이 짧아진 걸 보면, 자비의 하나님의 끈에 붙어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7. 일곱째 날 : 무죄한 피를 팔고 얻은 돈의 결말(마27:3-10)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에 자책한 후 뉘우침의 결과

⓵ 일반적으로 세상에는 돈을 어떻게 버는가 보다 얼마나 많이 버는가에 집중된 마음들이 많은데, 이는 돈이 많아도 자신의 생애는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생각임

⓶ 유다는 예수님을 자극하는 것이 그의 메시야성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나, 결국 예수님을 잡아가는 과정이 바르지 않다고 느낌(3절)으로 대제사장에게 그의 무죄한 피를 팔았음을 고하고(4절) 자신은 스스로 목매어 죽음(5절)으로 그 받은 값의 결말이 허무하게 끝났을 뿐 아니라, 그 돈조차도 생명이 없는 나그네의 묘지 값으로 사용됨(7절)

⓷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라는 뜻은 탐욕으로 얻는 물질은 결국 자신을 찌르게 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 풍성함을 누리라는 의미

 

유다가 ’스스로 뉘우치‘(3)고 돈 30을 돌려준 후 죽음으로 끝남

⓵ 진실한 뉘우침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처럼 그 죄의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여 생명의 역사로 나타나게 하는 것인데, 유다는 그렇지 못했음

 

[어떤 잘못에도 도망가지 말고 직면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다시 새롭게 되어 생명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예수의 길을 걷는 자의 온전한 도리임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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