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23사순절 첫이레 기도회(마26:1-35)

신실하심 2023. 3. 2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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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날 : 왜 유월절에 팔리셨을까? (마태26:1-2)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팔릴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심(2)

 

왜 유월절인가?

(출12:12-13 참고)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즉, 넘어가는 날이 유월절로, 이후 이것이 근원이 되어 모든 절기에 제물을 드렸다.

우리를 넘어가게 하셨고 앞으로도 넘어가게 하실 분이 주님으로,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림

이 땅을 살면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어린양의 피가 우리의 고통을 넘어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과 위험을 넘어가게 하셔서 넘고 살게 되는 것을 기억해야

 

팔리는 것은 자기 주도권이 상실되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임에도, 주님은 팔리는 방법으로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것인데 사실은 이것이 가장 적극적인 주도권을 갖는 것. 즉 의지적 결정으로 적극적으로 팔리심

소극적 사랑 안에 숨어있는 적극적 의지를 보인 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소극적 의지처럼 보이는 것이 적극적 사랑임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

사순절 기간을 통해 주님에게 집중하다 보면우리의 삶 속에 팔림처럼 나타난 주님이 실은 매우 적극적 사랑을 하고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되어 우리 삶이 더 풍성하고 복되게 하신다

 

[어린 양의 피가 우리를 살리셨음을 다시 기억하고, 순간마다 내 삶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이끄시는 주님을 깊이 깨닫도록 낡은 마음이 새롭게 되는 시작이고 싶다]

 

2. 둘째 날 : 어떤 시간을 살고 어떻게 선택하는가?(마태26:3-5)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인데(2) 관정(=관저)에 모여서(3) 흉계(속임수)를 써서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함(4)

하나님의 복을 따라가야 할 절기(수난을 통해 하나님이 인생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할 유월절)에 백성들을 복되게 할까를 논의해야 할 장소에서 속임수를 써서 예수를 죽이려는 모임을 한다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나름대로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옳은 일이라 둔갑된 상태

절기를 주신 것(유월절, 작은 부활인 매주일 예배 등)인생의 현실적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할

 

민란이 날까 염려함(5)

그 당시가 체제가 무너질까 두려웠던 정치인, 대제사장이 2명이었던 종교적 분열, 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무리들이 존재하였고 제자 공동체 안에 서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런 상황이 예수를 팔리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스스로 팔리기를 결정하신 것임을 말씀(2)하시면서 이는 말씀에 기반한 것임을 말씀하심(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성서에 나온 예언의 말씀)

바리새인들의 선택 기준은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었음(5절, 민란이 날까 두려워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현실이 먼저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나, 내 안에서는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픈 소망이 있다. 그래서 날마다 닥쳐오는 잡다한 상황이나 갈등 등에 대해 더 선명하게 말씀에 잇대어 반응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는 않다]

 

3. 셋째 날 : 무엇에 분개하는가?(마26:6-13)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서 예수께 부은 사건에 제자들이 분개함(7-9)

제자들은 여인이 그리 한 진짜 의도를 알고자 함이 아니고, ’허비‘한다고 단정하고 있음

여인의 행위가 갖는 영적 의미나 예수님의 관점, 여인의 의도를 무시하고 모두 ’제자‘들이 결정하고 있음

제자들은 ’효율/성과‘를 추구하고 있는데(9),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인 줄 인식하지 못해 결국 주님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됨

⓸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아야 주님의 길을 갈 수 있음

 

예수님은 여인이 한 일에 대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심(10-13)

주님이 가실 십자가의 방향에 여인이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이라 하심(12, 장례를 위함이요)

결국 그 여인은 앞으로도 기억되는 제일 위대한 제자가 됨(13)

위대함은 내가 만든 ’효율과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의 동행에 있음

지금,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한다면 나도 모르게 그것이 주님의 방향으로 가게 하여 위대함이 나타나게 됨

 

[살아왔던 인생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효율과 성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길이라 여겨 애썼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간간히 느껴지는 효율이 주는 결과와 하나님의 뜻 사이의 간극을 해결하지 못해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효율과 성과를 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 나라로 이끌지 못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의 죄성이 나 자신도 모르게 효율쪽으로 끌고 가기도 하지만, 성령께서 다시 잡아당겨 ’하나님과의 동행의 자리로 이끄시는 경험을 하며 요동치는 세상살이에도 전보다는 덜 요동하며 평강을 유지하게 되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4. 넷째 날 : 주님이 실망스러울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마26:14-16,유다의 예수님 배반 사건)

 

가룟 유다는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않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음

⓵ ’가룟‘은 ’지역‘ / ’단도 또는 짧은 칼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유다는 칼을 차고 독립운동을 하던 열심당원이었을 것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스타일에 따라 삶의 틀이 형성되는데, 가룟 유다의 입장에서 자신의 틀로 주님을 해석하다 보니 주님께 실망했을 것

우리도 내 관점과 다른 주님이나, 가족, 이웃, 공동체 등에 실망하여 ’뒷담화‘ 등으로 해소하거나 넘길 수 있는 죄인임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 실망할 수 있으나 실망 해소를 위한 후속 방법이 매우 중요함

유다가 주님께 실망했으면 ’주님께 가서‘ 자신의 실망의 이유 등을 말씀했다면 다시 회복의 기회를 얻게 되었을 것임

유다는 예수께 가지 않고 ’대제사장들에게 가서(14) 얘기하고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음(16)‘으로 결국 악한 길로 가게

 

[세상살이에서 내 맘 같지 않아 일어나는 힘든 일들은 언제나 생기는데, 이건 타인 때문일 수도 있고 나 자신 때문일 수 도 있다. 그런데, 실망을 해소할 방법을 세상에서 찾으려 하면 찾아지지도 않을뿐더러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경험하며 살았다. 그래서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현존하시는 하나님께 여쭙는 시간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선명하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아 애태우기도 하지만, 자연을 통해 아니면 바람처럼 살그머니 넣어주시는 생각들이나, 읽었던 말씀을 다시 조명해 주시는 은혜로 깨달아지는 시간들이 점차 늘어난다. 그래서, 요즈음엔 그런 일들이 있어도 잠잠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은혜이다]

 

5. 다섯째 날 :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17-25)

 

예수님은 사람의 배반, 긴장 등이 있는 고난의 끝자락에 있는 상태에서도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너(가룟 유다)에게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24)라는 화법으로 말씀하심

보통 사람들은 늘 자기중심의 화법으로 말하는데,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안타까움으로 가룟 유다를 먼저 생각하는 긍휼함이 내재됨으로 ’대상 중심의 화법으로 말하심

⓶ ’동정과 사랑이 함께 있는 삶이 그리스도적 삶

다른 제자들도 ’자기중심적 화법으로 말하고 있다(22, 25, ’나는 아니지요’)

나는 아니지요의 의미는 작은 악을 그냥 넘기는 태도, 런 작은 악의 선택이 결국 예수님을 파는 큰 악을 생산하게 되어 악의 카르텔 속에 들어가게 되고 나와 함께 우리(공동체)를 악한 길로 가도록

나 하나만이라도가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가게 하심

 

[어떤 원치 않는 상황에 부딪칠 때 나는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발뺌하거나 자위하는 게 쉬웠다. 그런데 예수님의 길을 가는 자로 살려면 나만이라도, 나라도. 내가 당하고 받아들이는자여야 한다니...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픈 소망이 있으니, 말씀을 기꺼이 따를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한다]

 

6. 여섯째 날 : 그리스도를 막는 사람들(마26:26030)

 

예수님이 죽기 전에 제자들과 가졌던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성만찬과 모든 과정이 같으나, 다른 점은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16), 이게 내 피다‘(28)임을 강조하신 것

우리는 먹어야 사는 존재로, 수난의 끝자락에 자신의 메시지를 이렇게 주신 것은 과연 우리가 먹은 것이 정말 우리에게 유익했던 것일까? 먹고 마시는 것들 중에 진짜 생명을 주는 것이 얼마나 될까를 다시 돌아보자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영적 생명을 위한 음식도 먹는데, 진짜 생명을 위한 것이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즐거움을 위해 쾌락을 먹기도 하는데, 이 속에는 생명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생명과 상관없는 것들도 많으므로, 쾌락에 집중하다 보면 더 많은 불필요한 것들이 축적되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진짜 생명은 바로 그리스도뿐으로,으로, 온갖 자연의 공기, 햇빛, , 흙 등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양분 삼아 자란 자연의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먹는 음식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것을 자각하며 먹는 성만찬적 관점으로 일상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먹고 마시는 사람만이 주님을 찬미하며(30) 감람산의 고통도 기꺼이 동참하는 자녀가 된다

 

[강의 때마다 학생들에게 너희들의 몸은 너희가 먹은 음식의 결과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영양선생이었지만, 그 음식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장치였던 것은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몸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영혼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날마다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성만찬적 먹음을 기억하겠다]

 

7. 일곱째 날 :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마26:31-35)

 

왜 예수님이 베드로가 주님을 3번 부인한다는 말을 강조하셨을까?(34)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라고(33) 말하는 베드로의 심정은 오늘 밤에 너희가 다라는 말(31)이 무척 싫었던 것

베드로 자신은 다른 이와 다르다라는 우월주의 가운데 있어 자신은 다른 이와 존귀함이 다르다고 생각함

하지만, 주님이 나와 같은 인간이 되셨기에 내가 존귀함을 입은 것 같이, 다른 이와 같음 안에서 존귀함을 발견해야.

이로써,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 예고와 부활 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것(32)을 흘러 보내게 되었고, 결국 헤매는 시간을 갖게

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라 성장하는 사람만이 본인도 모르게 존귀하게 되는 것

주님의 예고를 들으며 산 자의 특별함은 겸손(=나는 다른 이와 같은 죄인이다)에서 비롯됨을 인식해야

 

[특별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고, 더 달라지려고 애썼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들을 통과하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좀 더 깊이 만나게 되고부터 나의 죄인 됨이 더욱 선명해졌고 이해가 안 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여유도 생겼다. 물론, 늘 그렇지 않아 또 무릎을 꿇는 시간도 종종 있지만. 어쩌면, 이렇게 말씀에 나를 비추어 온전치 못한 곳을 다시 회복시키며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 ‘동행’이고 하나님 시간을 사는 자라니, 기꺼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소망한다. ‘특별’함보다 ‘주님과 함께’를 더 구하며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