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레위기' 강해 요약 1(1-15장)

신실하심 2021. 7. 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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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둘째 주부터 매주 수요예배 시 담임목사님의 레위기 강해가 시작되었다. 읽어도 실감나지 않는 이스라엘 제사법 및 정결 예식 등이 기록되어 있는 레위기가 왜 성경에 포함되어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았는데 강해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기억하고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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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이 제사장 나라를 만들기 위한 애굽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 레위기는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한 규례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 

 

1-7장 제사 규례 (2번 반복-헌재자 입장과 제사장 입장에서 기록)

8-10장 제사장을 성별과 거룩방법

11-16장 일상 속에서 거룩을 이루는 법

17-24장 구체적으로 사는 법

 

1. 번제 (레위기 1장)

예배드림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된다(레1:1). 이는 예배의 주도권이 내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며 우리를 예배당으로 초청하신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 나를 만나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아가야 한다. 

 

이 때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자는 흠없는 가축(그 당시 가축은 가족과 같은 것. 아주 귀한 것)을 예물로 가지고 나와야 하는데, 집에 있는 소를 익숙하지 않은 길을 따라 회막문까지 데려오는 일은 매우 힘든데 흠까지 없어야 함으로 예배자로서는 무척 고단한 여정이다. 헌제자는 데려온 가축을 번제단에 묶고, 안수하고(이제는 그 가축이 나로서, 내 죄가 그 가축에게 전가됨을 의미), 죽여(심장 또는 미간 또는 동맥을 쳐서) 그 피를 받아 회막 안 제단에 뿌리고, 껍질을 벗긴 후 각을 뜨고(마디를 모두 분리시키는 것),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은 후 그 것을 뜬 각과 머리와 기름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는 고생스러운 번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나보다 체격이 큰 소를 죽이는 과정은 헌제자가 피범벅될 정도로 사투를 벌여야 하는데, 커다란 소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 역시  제사는 고통, 잔혹, 아프고, 온 몸이 갈라지는 듯한 일이나, 이 과정을 통해 내 안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끝내 내 죄의 사함을 받아 정결함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 때에야 비로서 예배의 자리로 갈 수 있다.

 

즉, 헌제자가 제물을 바치는 것은 예배자가 정성과 수고를 다해 예배의 자리로 나가야함을 의미하는데, 동물이 마디까지 부서져 불살라 태워짐은 죄를 향해 나가려는 혈액이 다 빠져나가고 마디마디의 죄가 완전히 해체되어 죄된 영혼이 정결하여 흠없는 자로 변화됨으로 죄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진 상태를 가질 때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태워진 피와 살의 비린 연기를 향기롭다고 하신 것.

 

헌제자는 자신의 형편 안에서 가장 귀한 것을 제물로 드렸는데 이는 제물의 크기와 제사의 능력은 비례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은 제물 속에 들어 있는 가장 진실된 마음을 원하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장 귀한 제사은 '상한 심령'(시51:17)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자기 죄를 철저히 해체한 자만이 온전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2. 헌제자 입장에서의 소제 (레위기 2장) : 고운 가루 한웅큼의 은혜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예물(=코르반)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드리는 선물, 인간의 심장 또는 장기를 나타내는 단어로 우리가 죄로 멀어질 때 하나님께 가까이 올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즉, 주님과 가까이 하고 싶은자 또는 지금 자신이 주님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모조품이 아닌 자신의 심장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제의 재료는 곡식인데, 요리가 되지 않은 고운가루(레 2;1-3)에 기름과 유향을 넣고 한 움큼만 태워 제물로 쓰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가족이 먹었고(레2: 3,10), 유향이 매우 비싸므로 고운 가루에 기름만 넣고 화덕이나 철판, 냄비에서 익힌 것(레 2:4-10)도 소제의 예물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가난한 자들이 가난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며 이러한 소제를 속죄제로도 드릴 수 있었다.

 

요약하면,

1) 소제=조공, 선물의 의미 : '하나님께 충성을 고백하는 것' [신26:9-10 참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셨으니, 나도 하나님께, 가족에게, 이웃과 공동체에게 맘을 다해 충성하겠다는 고백을 담은 것

 

2) 고운 가루 :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완전히 갈아져야 함을 의미. 교만, 의지, 자랑 등이 다 형체가 없어지는 과정은 완벽한 자기 부인, 자기 죽음을 말한다. 예수님처럼(요12:24 참고)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을 맛보게 되는 것으로 말씀이 우리를 타격해 완고한 성격이 부서져야 새 사람이 되어 살 길이 있다는 것 

 

3.1) 드려야할 것(레2;2-5) : 기름(=기쁨 사61:3 참고), 유향(=즐거움, 잠27:9 참고)인데 이는 우리 자신이 죽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신다는 뜻

 

3.2) 드리면 안되는 것(레2:5,11) : 누룩(=부풀리는 것),  꿀(=달콤). 즉 잘못한 것은 축소시키고 잘한 것만 확대하는 게 죄의 특성인데 너의 모습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가져오고 본질을 흐리는 달콤한 자극은 멀리할 것

 

3.3) 반드시 쳐야 할 것(레2:13) : 소금(=하나님의 언약, 부패 방지)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나에게 사랑과 성실함으로 오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내가 이러한 소제를 드릴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됨

 

4) 소제는 한 웅큼만(레2:2)만 기념물(레2:9) 드린다 :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심을 기억해라! 우리의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하심을 알고 드리는 한웅큼의 은혜. 나머지는 제사장의 것으로 하나님의 공동체를 돌보는 제사장이 자신의 사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실용적 돌봄까지 아우르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 현실과 소통하는 신앙.

 

5) 맏물, 즉 첫 이삭(레14-16)을 드림 : 하나님이 나의 인생과 삶의 기원임을 철저하게 생각하라는 의미 

 

3. 헌제자 입장에서의 화목제 (레위기 3장)

화목제는 감사할 때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로, 화목제물은 흠없는 가축 중 수컷이나 암컷을 드리는데 전체 과정은 번제와 같으나 3:3-5의 모든 기름(그 당시 최고로 값진 부분)과 콩팥(그 당시 사람들은 콩팥을 자기의 감정이 머무는 곳이라고 여김)을 떼어내서 번제물 위에서 불태우는 부분이 차이가 있다. 이는 자신의 가장 좋은 것과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름을 떼어내는 작업처럼 반복과 계속적인 수고가 있을 때 하나님과의 화목을 경험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즉, 기름을 떼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거룩하지 않은 것 같은 내 일상 중에도 가만히 살펴보면 아주 작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거룩한 것들이 있음을 알고 평화를 누리며 감사함으로 살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움이 내재한다. 

 

화목제의 제사는 제사를 드리고 제사드린 다음 날까지 모든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까지(레7:18) 포함되는데, 축적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이웃까지 풍요를 가져오는 샬라미(평강을 나타내는 샬롬의 복수로 관계의 완전성, 번창, 복지를 의미)를 이루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성서적 복지는 의무로서가 아닌 기쁨과 감사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되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공동체적 식사(=애찬)를 하는 것까지가 예배에 포함되는 거룩한 제사임을 알아야 한다.

 

4. 헌제자 입장에서의 속죄제 (레위기 4:1-5:13장)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레4:2-3)'

 

부지 중에 범한 죄조차 죄로 인식해 죄를 직면하여 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가 속죄제로, 죄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은총은 바로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자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떼어낸 기름은 번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나머지 송아지 전체는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르는데(레4:12), 그러므로 이 곳을 정결한 곳이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그랬다(히13:10-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제사장의 속죄제 과정에서는 제물의 피를 휘장 앞(=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 즉 여호와 앞에 일곱번 뿌린 반면(레4:17), 족장이나 평민의 경우는 번제단 뿔들(=기타 백성이 거하는 성소 밖을 의미)에 발라 속죄하도록 명령하였다. 속죄제를 정결제라고도 하는데 이는 심령 뿐 아니라 각자의 삶의 공간까지 정결한 상태를 유지함으로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죄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내 죄가 큼을 인식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자복하는 자는 남의 죄를 함부로 비판하지 못한다. 내 자신이 가장 낮은 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될 때 비로서 죄를 용서받는 은총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고 정결한 자로 여김받아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5. 헌제자 입장에서의 속건제 (레5:14-6:7)

'속건'은 보상, 배상을 의미하는데, 이는 속죄하면서 배상까지 하는 것으로 제물은 흠없는 숫양으로 정해져 있다

속건제에는 속죄제에서 행했던 피를 바르거나 뿌리는 부분은 없고, 흠없는 숫양으로 제사드리며 원래 손해입힌 것에 1/5을 더해(레5:16) 배상을 하는 것이 속죄제와의 차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 죽음을 통한 이웃 사랑이 동일하다는 마22:37-39 말씀이 속건제의 기본 정신으로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삶이 곧 하나님의 삶인 것을 나타낸다.

 

성경에 기록된 '범죄하면'의 의미는 '성실하지 못하게 했으면'이라는 뜻으로 아래의 것들이 이에 속하는데,

1) 성물을 범한 것 : (레27:16-21 참고. 서원 예물 드리는 부분) 성물을 드리려면 그 값을 매기고, 희년이 되기 전에 값을 치뤄야 다시 자신의 것이 되는데, 그 값을 치르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번거로운 절차와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매 순간 드려진 성물을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격해 살므로 복된 삶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임을 알아야 한다.

 

(레5:15) 배상을 정할 때 모세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환산했는데, 통상적으로 시장의 세겔보다 더 무겁게 계산되었다. 이는 성물을 범한 자가 일상에 영향을 준 것을 깊이 회개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 큰 책임과 무거움을 새기고 시장의 세겔보다 더 무거운 성소의 세겔로 배상하겠다는 고백이다.

 

2) 부지 중에 여호와 계명을 범한 것에 대해(레5:17) : 사람은 이를 '실수'라 하나 하나님은 '허물(또는 죄악)'이라 여기시기에, 부지 중에라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반하는 죄를 벗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싶은 자들은 속건제를 드렸다.

 

3) 이웃의 물건을 범한 것에 대해서(레 6:1-7) : 동일한 배상과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데, 이런 행위를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함'(레6:2)으로 여기는 자들만이 깊은 회개와 함께 속건제를 드릴 수 있다.

 

4) 사53:5-10에는 고난받는 종의 죽음을 속건제물로 드려졌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뿐 아니라 이웃에게 해한 것까지 다 배상하셨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5가지 속성의 제사를 예수님이 모두 가지고 있는데, 5 제사를 충실히 받아들일 때, 예수의 희생제사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6. 제사장 관점에서의 번제와 소제(레6:8-23)

제사장과 제사자(도는 헌제자)의 입장이 다르므로, 헌제자 뿐 아니라 제사장들에게도 충실한 제사(예배)가 되도록 만드시려고 규례를 주신 것으로, 누구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는 뜨거운 갈망이 있을 때 드려지는 제사나 예배가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

 

레6:16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통로로 사용되는 제사장에게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예:성만찬,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 기도 등), 이는 '먹는다'는 것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하나님에 대한 관점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1) 번제(레6:8절) : 불이 꺼지지 않게 함이 중요한데, 이는 꺼지지 않은 불을 보며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으로 제사장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관리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불을 관리 동안 세마포 긴옷과 바지를 입고 있다가 재를 버리러 갈 때는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데, 이는 직무에 적합한 옷으로 갈아입음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늘 염두에 두고 기억해, 자신의 영적 태도를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평범하고 불편한 일이지만,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반복적 지속적인 일들이 영적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행위다.

 

2) 소제(레6:16-18) : 한 웅큼은 제물로 드리고 나머지는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는데, 누룩이 없는 떡(맛없다)이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충실히 섬겨 받는 보상으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극한 거룩함 만이 그들의 소득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제사장에게뿐 아니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그 어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히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영원한 소득인 것이다. 제사자가 제사장일 경우(제사장의 위임 때)는 제사장의 모든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라(레6:19-23)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모두가 다 바쳐졌다, 죽었다'라는 의미로, 제사장은 매일매일 완벽하게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확인하며 섬기는 자가 되라는 뜻이다. 

(레6:21) 제사장 위임식 때 드릴 소제 예물은 기름으로 반죽하고 철판에 굽고, 기름에 적셔 썬 것을 드리는데, 이는 기름(성령)에 빚어지고, 반죽이 유지되도록 굽고, 다시 기름(성령)에 젖어서 영혼이 잘라져 나가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완벽한 자기부인의 과정과 온전한 헌신에 이르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하다.

 

7. 제사장 관점에서의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레6:24-7:38)

1) 속죄제 :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 제물을 잡을 것(레6:25)을 명령하셨는데, 이는 죄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짓는 내가 여호와 앞에서 죽는 것 뿐으로, 여호와 앞에 서려면 속죄받은 나만 남아야 된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만 찾으시기 때문이다(요4:23참고). 제사장은 그 곳에서 잡은 번제 제물을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었는데(레6:26), 그 고기, 즉 거룩해진 제물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해 진다고(레6:27)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에게 죄의 침투(사단의 방식)가 빈번히 발생하지만, 거룩의 침투, 즉 하나님의 거룩에 맞닿는 자는 죄의 침투가 저지되어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만이 사단을 이기는 방식인 것을 의미한다.

 

2) 속건제 : 속죄제의 규례와 같다(레7:7)

 

3) 화목제 : 감사의 화목제물은 첫날에, 서원의 화목제물은 둘째날까지 먹어야 했다. 이처럼 화목제물을 어떻게 먹는지가 매우 중요(레7:15-18)한데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을 말한다. 즉, 축적의 욕망을 흘러보내는 나눔으로 변화시키는 자들만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사실, 인생은 늘 축적과 나눔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사는 삶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몸이 부정한 자, 부정한 것에 접촉된 자, 기름(하나님의 것) 또는 피(생명)를 먹은 자들은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레7:19-27)는 것은 자기 만족적 신앙을 추구하는 자는 공동체적 신앙을 경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제사장의 소득은 이스라엘 백성이 챙기도록 명령하셨는데(레7:28-34), 이는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제사장의 수고가 있는 것처럼 나의 신앙은 누군가에 의지되어 있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즉, 우리의 용서받음은 동물들의 죽음, 제사를 돕는 제사장과 회막을 지키는 레위인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공동체를 섬기는 모든 이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제사장은 소득으로 받은 여호와의 화제물을 앞뒤로 흔드는 요제(레7:30)와 밑에서 위로 흔드는 거제(레7:32)로 삼았는데 이는 방향의 전환 또는 교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이 불완전한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렸더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이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시 온전한 것으로 주시는 것을 경험하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는 자이나,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사죄의 은총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임을 기억하여, 예물을 들고 (=코르반,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마음) 하나님께 나아갈 때 5가지 제사 방식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길을 예비하셨다(레7:38).

 

8. 제사장 위임 예식 (레8:1-36)

제사장 위임식은 '거룩'의 유지가 목적임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 같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여호와께 순종하는 것을 통해 제사장 제도가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도 교회의 직분의 시작은 백성들을 거룩하게 해 하나님이 백성 중에 거하게 하기 위한 것, 즉 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중재자(출29:43-45 참고)로 세워졌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하심의 첫 시작점을 잃어버리면 교회의 생명력도 상실하게 된다.

 

1)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심 : 아론은 그가 손을 폈을 때 개구리가 올라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고(출8:5-6 참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영광 중에도 거했던 사람이었으나(출24:10-11 참고), 백성을 반역하게 만든 아론(즉 백성을 우상 숭배하게 한 장본인, 출32:25 참고)이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은 엄청난 사건임.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고 아론은 제사장 직분을 받기 전에 공동체적 용서(또는 화해)를 통과했을 것(출19-20, 32장 참고. 아론의 이름은 출33장부터 레8장 전까지 성경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즉, 위임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론 자신은 스스로 자격없는 자임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고 백성들은 자신도 죄인임을 깨닫고 아론을 용납한 상태였기에 예식이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아래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2) 위임식 과정 : 원래대로라면 속죄하는 제사장이 가져갔어야 할 속제 제물을 하나님의 대리인 자격을 가진 모세가 가지고 갔고(레8:2), 모세가 아론을 씻기고(하나님이 죄를 씻김), 입히고(죄인이었던 자신이 감추어지고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남, 하나님의 성결이 이루어진 자), 씌우고, 붙이고 기름을 덧발랐다(성령의 기름부음, 덮어주심, 하나님의 사람으로 갱신) 또한 제물을 모세가 잡았는데(레8:15),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이 준비해서 세우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3) 위임식 제사는 3가지로, 속죄제와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 그리고 화목제가 드려졌는데, 기존의 화목제와 다른 점은 제단에 피를 뿌리기 전에 피를 위임받는 제사장의 오른쪽 귓부리,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바르는 것이 추가되었다(레8:23). 이는 제사장이 듣고, 섬기고, 행하고, 일하는데 있어서 가장 연약한 부분에 보혈을 발라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서 가는 것은 어린 양 예수의 보혈로 완성됨을 의미한다.

 

4) 7주야를 회막문에 머무름(레8:35) : 죄를 짓는 것은 한 순간이나 죄를 정결하게 되는 것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처음 만난 하나님의 말씀과 직분, 다짐에 계속 머무는 것이 쉽지 않아 우리 영혼 안에 죄가 소멸되지 못해 자신을 괴롭히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데, 이처럼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자만이 보혈에 의해 죄가 씻어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져 감을 경험하게 된다. 

 

9. 아론이 드린 성공적 제사와 실패한 제사(레9:1-10:20)

레9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위임식을 치르고 행한 첫번째 성공적 제사를, 레10장은 실패한 제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1) 회막문에서 7일이나 머물러 속죄제를 드렸는데, 아론이 행한 첫 제사에서도 아론을 위할 때나 백성을 위할 때에 모두 속죄제를 가장 먼저 드렸다. 이는 하나님을 만나는 첫번째 시작은 나의 죄를 회개하는 것부터이며,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 임재가 나타나길 소망하며 드려야 하는 것이 예배이다.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가시적으로 또는 상황과는 무관한 내면적 고요와 영적인 자유와 같은 불가시적인 은혜를 누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 제사는 아론 자신을 위해 먼저 제사드리고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렸다. 이는 리더 자신의 영혼을 위해 먼저 속죄와 헌신을 확인해 영적인 힘을 회복하고, 다음에 섬기는 공동체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리더 자신의 영적 균형을 맞춘 후 공동체를 섬겨야하는데 이는 내가 훼손되면 남을 향해 화살을 쏘는 자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3) 제사장을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백성을 위해 속죄제, 번제, 화목제, 소제를 드리는데, 이처럼 하나님과의 만남은 나의 죄를 회개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헤가 넘침을 기억하자(롬5:20참고).

 

4) 제사의 마지막은 축도로 마무리된다(레9:22-23). '축복'은 제사장의 특권으로 하나님의 복이 나로부터 나와 이웃과 세상에게 복을 전파하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나타나길 소망하며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제사를 드린 후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이 태워지는 성공적인 제사가 되었는데(레9:24), 직후 레위기 10;1-2에는 여호와의 명령과 다른 불을 가져와 분향하던 나답과 아비후를 불이 삼켜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은총'이 얼마나 채워졌는지를 인식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레10:9에는 제사장들이 영적 민감성을 갖도록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그리하여야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규례를 백성들에게 바르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레10:10-11).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다는 것은 기계적인 순종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10. 정결과 부정에 관한 규례(레11-12)

음식(11)과 출산(12)에 관한 정결 규례에 대한 말씀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거룩<=>정결(정상 상태)<=>부정 의 3중 구조의 사고를 가졌는데, 부정한 상태가 거룩해지려면 정결 예식을 통과해야 했다.

 

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규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심으로 우리가 거룩해진다. 이는 그 당시에는 거룩해지려면 성전에 가야 거룩해지는데, 이 음식법을 통해 일상 속에서 거룩의 자리를 발견하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자임을 자각해야한다.

 

2) 살아있으면 부정하지 않지만 죽으면 부정해짐 : 죽음에 접촉하지 말고 생명에 접촉해 사는 것이 거룩을 경험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생명에 이르게 하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빨고, 씻고 무너뜨리며 사는 백성이 되자.

 

3) 죽은 동물을 만지거나(11:24), 옮기면(11:28) 저녁까지 부정 : 저녁까지만 부정하다는 것은 매일매일이 '새 날의 은총'임을 알라는 것. 즉 소망을 앗아가는 부정이 축적되지 않는 것이 은총으로, 이로 인해 내면에 좌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해준다

 

4) 순환/흐름(11:36)이 있으면 정하나 생명 순환이 훼손(11:37-38)되면 부정한 것인데, 이는 분별(레11:44, 47)의 내용을 암기하기 보다 분별의 정신을 알고 구별하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늘 기억해, 분별하고 적용하며 사는 것이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5) 몸 안의 부정 중 출산과 관련한 규례(12:6-7) : 출산하면서 흘린 피를 제단에 뿌려진 피처럼 그렇게 중대한 사건으로 이해했기에, 속죄와 번제(갱신)를 드리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남아와 여아 출산 후 부정의 기간이 다른 것은 차별이라기 보다, 생명을 보다 온전하게 보호함으로 초기 유아 사망을 줄이고 출산한 사람을 보호하려는 생명 존중으로 보는 게 바른 해석이다.

 

11. 피부병과 나병 규례(레13-14)

나병은 악성(또는 전염성) 피부병을 의미하는데, 이 규례는 '격리'가 아니라 '회복시켜 공동체로 돌아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죄를 향해 가는 마음을 꼼꼼이 체크해 하나님의 진 안에 있도록 애쓰는 것이 중요.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다 짊어지셨기 때문이다(8:16-17 참고).

 

제사장이 환부를 보고 부정을 결정한 후 7일 격리, 변화가 없으면 씻으면 정결, 변화가 있으면 다시 격리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공동체 삶에서 전염병 규례가 악용되어 의심이나 갈등을 야기될 수 있으므로 이런 절차를 따라 공정하게 행함으로 누구든 납득할 수 있고, 악이 제거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살기 적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상태를 세밀히 살펴 하나님의 진 안에 살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악성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옷을 찟고(깊은 슬픔), 윗입술을 가리고(죽음, 슬픔의 행동, 겔24:16-17참고), 부정하다 외치며 진영 밖에서 살아야 했다(13:46-47). 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치유 같은 자연적 치유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들 모두는 진 밖의 나병 환자처럼 진영 안의 예수가 내뻗은 긍휼의 손으로 나은(막1:40-42) 것 같은 경험을 한 자들이다. 우리는 예수가 우리의 모든 짊을 짊어지셨기에 진 밖에서 진 안으로 들어온 존재들로(마8:16-17), 예수만이 거룩한 삶의 유일한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14장에는 '진 밖에서 진 안으로' 들이는 회복되는 길을 말씀하신다. 이 때 진 안으로 들일 때 아래의

1) 8일 만에 정결 : 공동체의 용서와 수용, 지지를 의미

2)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를 모두 드리고

3) 속건제 피, 기름을 오른 귓부리, 엄지 손가락,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바름(14:14,17,28)

세가지 과정이 대제사장 위임식 때와 매우 유사한데, 환자를 진영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을 위임식만큼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처럼 환자의 정결과 회복은 예수 보혈(피)과 성령의 기름부으심(기름)으로만 가능함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공동체의 용서와 수용 및 지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것이 가정 또는 교회 공동체의 본질이다.

 

4) 살아있는 새를 성 밖 들에 놓아주었다(14:53) : 죄를 멀리 날려보내는 것 만이 죄를 짓지 않고 정결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려주는데, 이처럼 죄로부터 자신을 멀리 떨어뜨리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남성이나 여성의 유출병 규례 (레15)

유출병이라 함은 현대어로 비뇨기과적(또는 생식기적) 질병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급을 꺼려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영역이나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영역 모두를 아울러 당신의 거룩한 영역으로 만들어가심을 보여 주시는 것으로, 고대 근동 사람들의 생식기에 대한 2분법적 생각(터부 또는 신비로움)들이 모두 왜곡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건강한 부부관계를 결코 훼손하지 말 것을(레15:18) 명하신다. 

 

본문에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부정'이라는 단어는 죄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레위기 속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신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야 하는 거룩한 전쟁을 눈 앞에 둔 상태로, 거룩한 전쟁을 위해서는 거룩한 몸을 가져야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약탈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치뤄야 하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규례를 지킴은 의무조항이라기보다 거룩함의 백신으로 예방 접종을 해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다.

 

또한 레위기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레15:1) 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 뜻은 '너를 규제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백성이 되게 하려는 나의 사랑 표현'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는 결국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나자르, 헌신)...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레15:31) 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다시 말하면 '일상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일상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거룩의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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