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한 줄 말씀 모음(마가복음)

신실하심 2021. 1. 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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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야로 몰려난 예수님(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 1:12)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점인 세례 요한으로부터의 요단강 세례 직후,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냈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달픈 지점이 바로 의식주의 결핍인데,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이셨던 예수님께 또 다른 하나님인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라는 엄중한 고통 지역으로 내 보내어 사람의 일을 겪게 하신 것. 금식한 상태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고, 들짐승의 공격 가운데 사셔야 했던 40일간의 고통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제외하고 인생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시간에도 여전히 천사들은 예수님을 수종 들고 있었다. 난 겁이 많은 사람이라, 뭔가 변화되는 상황이 직감되면 우선 두려움과 불안감에 싸이는 적이 많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인간사 모든 것을 겪고 이기고 승리하셨으므로 담대하라~ 나를 믿어라~ 하시는데, 그 말씀이 떠오르기 전에 엄습하는 두려움으로 힘든 적이 많다. 그러다, 다시 맘을 다 잡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위와 같은 말씀들을 보고 깨닫게 하시면서 휩싸였던 불안감에서 벗어나 다시 평정을 찾고, 말씀의 힘으로 일어서곤 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 천사가 여전히 수종들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고통과 불안함에 둘러있을 때 역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중보 하셔서 보호하시는 은혜가 늘 흐르고 있다는 사실. 복음의 사역은 고통이 선행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 조차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이고 고통을 딛고 살아내는 그 모든 것이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복음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 

 

2. 하나님 나라(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 4:26) 

 

땅에 뿌려진 씨는 대부분 일정기간이 지나면 싹-> 이삭-> 이삭에 충실한 곡식-> 열매로 자라 추수하게 되는데(막 4:27-28) 정작 사람은 땅 속에서 씨가 어떻게 자라서 그리 되는지를 모른다. 다만 땅 위에 드러난 곡식의 성장기를 보고 유추할 뿐이다. 땅이 좋으면 틀실한 열매가, 좋지 않으면 비루한 열매가 맺히겠지. 이를 통해 내 안의 하나님 나라의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밭은 어떨까? 스스로 분석해 보면 길 가나 돌밭의 상태는 아닌 것 같고, 가시떨기에서 좋은 땅 중간 정도?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묵상한 말씀이 나를 넘어짐에서 일으켜 세워 온전한 기쁨을 누렸던 경험이 많았지만, 때로는 세상의 염려가 스멀스멀 밀려오면 잠시 불안해지고 두려워할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말씀으로 극복하고 오직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고요함 속에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평강 함을 유지하곤 했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나무가 흔들려도 그 흔들림이 오히려 땅 속으로 뿌리를 더 깊이 뻗게 함과 같이 천국 갈 때까지 여전히 이런저런 삶의 바람을 맞겠지만 그로 인해 더욱 하나님 말씀으로 견고한 심령을 갖게 될 것임을 믿기에 아직은 스스로를 좋은 땅이라 부를 수 없어도, 말씀의 양분을 마음밭에 열심히 뿌려 추수 때까지 힘을 내 온전한 알곡으로 빚어지는 소망을 품는다.   

 

3. 예수님 밀어내기(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막 5:16~17)

 

귀신 들려 무덤 사이를 헤매며 자신의 몸을 해하던 자가 온전해진 것은 안 중에 없고, 2천 마리나 되는 돼지가 바닷속으로 떨어져 몰사해 재물에 손해가 난 것에 더 집중했기에 예수님의 이적은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준 것이라 생각된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보다 혹시나 자신들의 소유도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예수님을 그들로부터 밀어내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밀어낸 성경 속의 그 인물들처럼 사실 내 안에도 예수님을 밀어내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시간들이 많이 있음을 돌아본다. 한 영혼이 온전함으로 가는 첫걸음이 예수님과 함께 하기임을 다시 깨달으며 나의 소유 조차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음을 고백한다. 오늘부터 예수님과 더욱 친밀해지기로 결심한다.        

 

4. 둔한 마음(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라-막 6:52)

 

혈루병을 앓는 여인의 병이 고침을 입고 오병이어의 기적 등을 몸소 체험했던 제자들이었지만, 눈 앞에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고 놀라는 제자들. 예수님과 지척에서 함께 생활했던 그 제자들조차 여전히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깨달아 알지 못하는 그 마음. 그것을 성경은 둔한 마음이라 표현한다. 그런 둔한 마음이 제자들에게만 있을까? 날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사는 나 역시, 상황과 환경에 묶여 지금도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보다 상황을 바라보며 불안해할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그때가 바로 마음이 둔해진 때. 하지만, 성경 말씀이 곁에 있어 이처럼 나의 둔함을 직면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60 평생의 시간들이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적이 없었음을 고백하며 다시 한번 둔한 마음을 예리하게 갈아 나를 통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직시하며 살고자 한다.  

 

 

5.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막 8:12)

 

7개의 떡과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사건 이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장면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칠병이어의 기적이야말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인데, 무엇을 더 요구하는 것인지. 그들은 애초부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 사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없는 게 없었다. 잘 된 것은 잘 된 대로, 실패한 것은 실패한 대로 하나님이 간섭하셨고, 또 멈춰 계시며 기다리셨다. 내가 웃고 울을 때 모두 곁에는 하나님이 계셨음을 돌아보니 깨달아진다. 내 삶 자체가 모두 하늘의 표적이었다는 것을. 지금 같은 평범한 일상조차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인 것을 고백하며 감사를 드린다.

  

6. 깨어 있으라(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막 13:37)

 

난리와 소문이 난무하고 지구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날 때 그때가 재난의 시작(막 13:78). 부모와 형제 사이에 대적함이 일어나는 그때에도 복음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한다.(막 13:10) 그 환난 후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막 13:26-27)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하늘의 천사도, 그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시므로(막 13:32)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신다. 깨어 있기. 근신하며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기. 성령을 통한 세미한 음성을 깨달아 듣기. 이것이 말세를 사는 우리의 태도임을 알게 하신다. 감사.   

 

7. 옥합을 깨뜨려 예수 머리에 부은 여인과 향유를 허비했다고 화를 낸 사람들(~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막 14:3-5)

 

가치 있는 소비란 무엇일까? 성인이 1년 간 일해야 벌 수 있는 정도로 값이 나가는 향유를 아낌없이 깨뜨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한 여인. 그 여인이라고 향유의 가치를 몰랐을 리 없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예수님이(눅7:47) 이제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값진 향유를 깨뜨려 부음으로 자신을 온전하게 드리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이 온전히 우리를 위함인 것처럼. 그러나, 예수님을 그저 선지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보통의 사람들은 그 향유가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현실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것에 몹시 분개하고 있다. 여인의 행위를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면서. 이런 일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물질은 결국 소비하면 끝이나, 예수님께 부어 드린 여인의 향유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늘 기억될 아름다운 헌신인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의 작은 소유 역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지를 여인의 향유에서 교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