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시간이 빚어내는 삶

신실하심 2020. 10. 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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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잠자는 시간이 죽은 시간인 것 같아 젊어서부터 3, 4시간 자면 족하게 여겼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해답을 못 찾을 때에도 몸을 열심히 움직여 잠자리에 들 때쯤 온몸이 피곤에 절어 손가락 까딱하기가 어려울 때면 오늘도 잘 살았구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주님을 만났다. 기질적 열심으로 밤낮 성경 읽고 기도하며 성경대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시간들이 많았다. 사방 천지에 예수 믿는 가족들이 없었기에 그저 맨 땅에 헤딩하듯,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고. 그러면서 남편도 교회에서 만나 가정을 이뤄 세 아이를 열심히 뒷바라지하며 내 공부도 하고, 집도 여러 채 장만하고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남편이 연구원 생활을 사직하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더 큰 것을 꿈꾸게 되었는데, 애들이 좋은 학교를 졸업해 변호사, 의사 등 세상에 내놓을만한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 넉넉한 재정을 모아 노후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 등을 바라며 한편으로는 주님의 삶을 따라간다고 기도했던 이중생활(?), 즉 실제로는 세상의 맘몬주의에 기댄 계획을 품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사는 생활로 변질되어 갔다.

 

그러다 만난 심각한 폭풍우에 허우적거리며 죽을 만큼 어려운 시간을 십여 년간 지나오면서 더 이상 살 소망이 끊긴 것 같은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고 났더니 어느새 인생의 나이가 60을 지나가고 세 아이들 모두 가정을 꾸려 각자의 삶들을 사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미래의 계획 속에 늘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누리며 살 것인가에 대한 소망이었고 또한 그 소망을 위해 기도하고 열심을 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면서도 가나안을 꿈꾸었던 것처럼. 그러나 광야에 살았던 모든 이들이 가나안에 입성하지는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꿈은 꾸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 수도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아닐까 한다. 가나안에 가든 못 가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 사실 가나안에 가지 못해도, 내가 계획하며 소망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해도 천국 가는 날까지 날마다 순간을 살아야 하는데 그 순간순간을 스스로 사느냐 아니면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가가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공간에 집착하며 살아왔던 시간들, 그러다 만난 폭풍 같은 시간들을 지나고 보니, 나는 몰랐는데, 그곳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지켜 오셨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실패한 인생처럼 여겼던 패배자의 삶에서 하나님이 나의 뒷배가 되신다는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는 행복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제일 처음 창조하신 것이 시간이라는 것. 그 시간이 내 인생의 여정마다 하나님의 빚어내심으로 말미암아 공간에 연연하지 않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인생을 기대하며 동시에 그 시간들을 누리길 갈망하는 자로 바뀌어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지금은 미래의 가나안을 꿈꾸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사는 지금 이 곳이 가나안으로 여기고 오직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만을 사모할 뿐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