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22

비 오는 날, 물놀이

증조할머니 집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 꼬맹이 손주들에게는 늘 기다려지는 곳이다. 때 아닌 더위에 산천이 목마르다 신음하고 있는데, 감나무 아래에서 물놀이를 할 생각에 한껏 들떠 있는 손주들에게 더위 따윈 안중에도 없다. 거실에 펴 놓은 넓은 요 위에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실컷 자고 일어난 두 꼬맹이가 꼭두새벽부터 감나무 아래 세워 놓은 파라솔 테이블에 나가 노할머니와 두런두런 얘기를 한다. 하필 비 소식이 있어 물놀이를 할 수 있겠나 싶어 꾸물거리는데, 애들은 물놀이옷 입는다고 성화다. 그래, 비도 물이니 비 맞으면서 물놀이하는 것도 재밌겠지... 남편이 수돗가에 큰 파라솔을 하나 더 펴고 그 밑에 애들이 들어가 놀 수 있도록 큰 통에 물을 채워줬더니, 세상 신이 났다...

늙은호박 점심상

태풍 덕에 줄기가 꺾여 뚝뚝 떨어진 엄마 텃밭의 늙은 호박들을 자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시고 제일 못생긴 것 하나를 속 파고, 껍질을 벗겨 정리해 놓으신 늙은 호박. 상하기 전에 얼른 처리를 해얄 것 같아 부침개와 짜글이 찌개를 만들었다. 조금 더 줄기에 붙어 있었더라면 더 주홍빛을 띤 호박으로 변신해 완전 꿀맛 호박으로 변신했을 터이나, 이 정도만 해도 꽤 달달해서 어떤 요리를 해도 설탕 그 이상의 맛을 낼 수 있다. 늙은 호박 짜글이 지짐은 서산이나 당진이 고향인 사람에게는 고향 같은 젓국지와 유사한 음식으로, 늙은 호박을 적당한 크기의 깍둑썰기를 하고, 마늘과 파, 텃밭에서 바로 따 온 풋고추를 숭숭 썰어 넣은 후 쌀 뜬 물을 자박하게 붓고 새우젓으로 간한 뒤 고춧가루 조금 넣어 볼그스름하게 색을 ..

2020 무농사 파트너

토요일 아침, 새벽 운동하느라 아직 엄마 집으로 출발 못했는데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바로 출발해요~' '그래? 그럼 오면서 무씨 한 봉지 사와라. '서호'로~ 작년에 심은 건데 괜찮더라~' '예~~~' 엄마의 1주일은 토요일이 첫날이다. 햇수로 13년 째 토요일이면 거의 엄마 집을 방문해 온 터라 매주 토요일이 엄마에게는 1주일 간 필요한 일들과 물품들을 조달하는 날이고, 나는 또 엄마의 필요를 해결해드리는 해결사(?)의 날로 굳게 된 것. 그러다 보니 텃밭의 주인은 엄마이고, 나는 토요 전원생활을 누리는 텃밭 조수가 되고 말았다. 엊그제 토요일의 미션은 김장무씨 뿌리기. 혼자 하시기엔 벅차도 누군가 돕는 이가 있으면 굽어진 허리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일하시는 엄마의 열정에 혀를 내두를 정도. 내..

야생 갓 물김치

텃밭 식물들의 생명력은 어마어마하다. 6월 말에 마늘을 수확하고 8월에 김장 무씨를 뿌리려고 소똥을 붓고 갈아 엎은 빈 텃밭에 어느 새 야생 갓이 여기저기 쑥쑥 올라왔다. 바람타고 날라온 갓 씨앗이 내린 비를 먹고 자리잡은 것. 이번 주 엄마가 주신 미션은 야생 갓 물김치. 지금까지 자기 치아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요사이 잇몸이 욱신거려 2 주 전에 담가 놓고 온 고구마줄기 김치가 맛은 있는데 질겨 잡숫기 힘들다시며 텃밭의 갓으로 물김치를 담가달라고 하신다. 엄마 앞에선 언제나 mission possible~~이어야 하므로 네!!! 하고 야생 갓을 다듬기 시작.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거라 배추벌레가 여기저기 잎을 갉아 먹어 볼품 없는 모양새이나, 유기농이니 그 정도는 애교. 벌레먹은 잎 발라내고 다듬어서..

고구마줄기 김치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토요일. 오늘은 비 와서 텃밭일이 없겠다 했는데, 웬 걸 엄마가 미장원 다녀오신 오후 4시경 잠깐 하늘이 반짝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엄마가 '비 와서 채소값이 비싸더라. 지난번 담근 얼갈이김치를 거의 다 먹어가니 고구마 줄기 따서 김치를 담가 같이 먹자~' 하신다. 에휴. 지금이 오후 4신데, 저걸 따서, 껍질 벗기고, 절이고 양념 만들어 김치까지 담그려면 도대체 몇 시에 끝나나? 머리 잠깐 굴리다가 엄마가 하시고 싶다는데 뭘 그리 하나 싶어 '그럽시다' 대답하니, 어느 새 엄마는 고구마밭으로 가 이미 고구마 줄기를 따고 계시다. 일을 안하면 여기저기 아픈데, 일하고 있으면 아픈 줄 모른다시는 엄마시니, 진통제 주사보다 원하시는 일을 하도록 해드리는 게 공경하는 일이라 생각해 그때..

감나무 밑 놀이터

벌써 4개월째 코로나 감염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사는 지역에 2차 감염이 다시 유행되고 있어 맘 놓고 어디를 다닐 수 없는 터라, 아이들과 어른 모두 지쳐 있는 상태다. 세 아이를 둔 큰 애네 경우, 초등,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닐 나이인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있어야 해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것조차 손녀들에겐 큰 나들이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랫만에 증조할머니께 인사도 드리고 물놀이도 하러 손녀들과 함께 성환에 왔다. 몇 년 전 심은 감나무가 제법 자라서 어느 정도 그늘을 만들어 주기에 튜브 수영장을 그 밑에 만들어 줬더니 이리저리 풍덩거리며 잘도 논다. 얼마나 시원한지 궁금해 발을 한번 담가 보니 꽤 시원하다. 어지간한 계곡에 발 담근 느낌이랄까? 손녀들의 물놀이가 한참 만에 끝나니,..

텃밭이 글밭...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주인은 엄마이나 누리는 건 나인 엄마 텃밭을 찾는다. 울 안의 풍경은 계절마다 달라 11년 째 방문하는 그 곳엔 지루함이 없다. 오늘은 날씨까지 청명해 연한 초록의 감나무잎 아래에 풍성하게 핀 다홍빛 양귀비가 더욱 선명하다. 감나무를 통해 눈에 들어온 것은 삼색 버들. 5, 6년 전 천리포 수목원에서 작은 모종을 사다 심은 녀석이 어른 키만큼 자랐다. 햇빛을 받으니 더욱 반짝이는 이파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살아 있음을 힘차게 알린다. 보라색과 흰색만 피던 매발톱이 올해엔 연보라꽃까지 피었다. 주인이 보라색을 좋아하는지 어찌 알았을까? 그 밑으로 몇 년 전 어버이날에 조카가 할머니께 사 드린 작은 화분의 패랭이꽃이 땅에 옮겨 심은 이에게 화답하는 듯 해마다 더 풍성하게 연분홍 꽃을 피..

2020 노모의 텃밭 봄맞이 2

3월 첫 주 토욜 아침, 남편과 함께 성환 엄마 집을 방문했다. 그 날은 유난히 엄마가 사위를 반겼는데, 알고 보니 비가 오지 않아 텃밭에 물을 줘야하는데, 고무호스가 여기저기 터져서 갈아야되는 상황. 뭐든 엄마 집 문제를 뚝닥 해결해주는 사위가 딸보다 더 반가운 모양이다. 그찮아도, 지난 주 남편이 엄마네 호스가 너무 낡았다며 바꿔야되는 것 아니냐고 내게 물었을 때, 물은 좀 있다 줄테니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당당히 대답했는데, 사실은 바꿔야 했던 것. 엄마가 사위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호스를 바꿔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남편은 내게 거봐~ 지난 주에 보니 호스 바꿔야 한댔잖아~ 하며 한 말씀 하신다. 그러게~ㅋ 후다닥 설비재료상에 가서 호스를 사와 새 것으로 바꿔놓은 사위를 향해, 엄마 왈 '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