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고구마줄기 김치

신실하심 2020. 8. 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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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토요일. 오늘은 비 와서 텃밭일이 없겠다 했는데, 웬 걸 엄마가 미장원 다녀오신 오후 4시경 잠깐 하늘이 반짝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엄마가 '비 와서 채소값이 비싸더라. 지난번 담근 얼갈이김치를 거의 다 먹어가니 고구마 줄기 따서 김치를 담가 같이 먹자~' 하신다. 에휴. 지금이 오후 4신데, 저걸 따서, 껍질 벗기고, 절이고 양념 만들어 김치까지 담그려면 도대체 몇 시에 끝나나? 머리 잠깐 굴리다가 엄마가 하시고 싶다는데 뭘 그리 하나 싶어 '그럽시다' 대답하니, 어느 새 엄마는 고구마밭으로 가 이미 고구마 줄기를 따고 계시다.

 

일을 안하면 여기저기 아픈데, 일하고 있으면 아픈 줄 모른다시는 엄마시니, 진통제 주사보다 원하시는 일을 하도록 해드리는 게 공경하는 일이라 생각해 그때부터 나도 손톱이 새까매지도록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고...

 

1시간 이상 지났어도 엄마는 고구마 줄기 채취에 여념이 없으신데, 나만 텃밭과 주방을 왔다갔다 하며 다듬은 고구마 줄기 절이고, 주방에서 풀 쑤고, 얼려놓은 빨간 생고추 내려놓고, 밭에서 부추 따다 씻어 일부는 저녁상에 올릴 부추전을 지지고, 나머지는 김치용으로 잘라 놓았다.

마침 찧어 놓은 마늘도 없어 뒷베란다에서 통마늘을 물에 불려 까 손절구에 찧고, 가스렌지에 물을 끓여 고구마 줄기 삶아 볶아 저녁 상에 올리고...

다시 절인 고구마줄기 뒤적여 놓고 다시 주방으로...

 

그때까지 엄마는 고구마 줄기를 채취하고 계셨다. '엄마 고만~~~~' 나만 소리 지르지, 귀가 어두우신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하시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니 그제야 멈추신다... 아... 고마운 비....

 

엄마~ 저녁 진지 잡수세요~~~

텃밭에서 따온 호박을 새우젓 조금 넣고 사각사각하게 볶고, 고구마줄기 삶아 부드럽게 볶아내고, 오이지에 금방 따 온 상추, 찐 가지나물, 풋고추가 들어간 매콤한 된장 찌개, 부추전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엄마는 또다시 남은 고구마 줄기 다듬으러 나가신다.

 

그 사이, 난 큰 그릇에 텃밭표 부추, 대파, 마늘, 빨간 생고추 간 것과 밀가루풀, 매실청 조금을 모두 섞고 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해 김치 양념을 만든 후

절여놓은 고구마줄기를 넣고 버무려 고구마 줄기 김치를 완성했다. 얼마나 뛰어다니며 일을 했는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인데, 89세 노모는 여전히 현관 밖에서 채취한 고구마 줄기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얘~ 이거 다 가져가 이웃과 나눠 먹어라~~

네~ 엄마.

 

혼자는 못해도 너만 오면 일하고 싶어지신다는 89세 엄마 덕에 오늘도 텃밭 체험을 진하게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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