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2020 무농사 파트너

신실하심 2020. 9. 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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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새벽 운동하느라 아직 엄마 집으로 출발 못했는데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바로 출발해요~' '그래? 그럼 오면서 무씨 한 봉지 사와라. '서호'로~ 작년에 심은 건데 괜찮더라~' '예~~~'

 

엄마의 1주일은 토요일이 첫날이다. 햇수로 13년 째 토요일이면 거의 엄마 집을 방문해 온 터라 매주 토요일이 엄마에게는 1주일 간 필요한 일들과 물품들을 조달하는 날이고, 나는 또 엄마의 필요를 해결해드리는 해결사(?)의 날로 굳게 된 것. 

그러다 보니 텃밭의 주인은 엄마이고, 나는 토요 전원생활을 누리는 텃밭 조수가 되고 말았다.

 

엊그제 토요일의 미션은 김장무씨 뿌리기.

 

혼자 하시기엔 벅차도 누군가 돕는 이가 있으면 굽어진 허리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일하시는 엄마의 열정에 혀를 내두를 정도.

 

내가 오는 날 무씨를 뿌리려고, 굽은 허리로 14 고랑을 모두 다져 놓으신 엄마. 오후 내내 일하시다 저녁밥 드시고는 TV도 못 보시고 잠드셨다고 한다. 너무 일을 해선지, 입맛이 없다셔서 얼른 닭백숙을 안치러 부엌으로 들어가고, 남편은 고랑에 무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 사이 고구마 줄기 다듬기를 마치신 엄마가 무씨 뿌리기에 나섰다. 89세 고령이시나 손놀림은 장정 못지않아, 늦게 동참했어도 남편이 6 고랑, 엄마가 8 고랑에 무씨를 뿌렸다.

 

그 사이 난 주방에서 도토리가루로 묵을 쑤고, 닭백숙, 가지 무침과 고추에 밀가루 묻혀 쪄서 양념으로 무쳐 부지런히 저녁상을 차렸다. 너무 일하시다 병나실까봐. 엄마가 원하시는 걸 해드리는 게 효도라 생각해 돕는 건데 편찮아지시면 다 무용한 일....

 

샤워하시고 저녁상 앞에서 하시는 말씀이 '다른 집들은 무씨를 다 심었다는데 나만 못하고 있어서 속이 탔었다. 근데 오늘 무씨 뿌려서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이제, 골파와 마늘만 심으면 올 농사는 끝이다' 하신다...

 

엥? 엄마~~~ 내 일은 지금부턴데요. 한 달쯤 후부턴 1, 2 주에 한 번씩 무청 솎아 김치 담그는 일이 11월까지 계속 이잖아요~~~~

 

옆에 있던 남편의 한 마디... '여보, 그 김치 되게 맛있잖아~~~'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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