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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꽃 봉숭아마저도 퇴색이 된 폭염 중에, 연분홍 상사화 한 무리가 꽃을 활짝 피웠는데, 하필 서 있는 자리가 울창한 가지를 자랑하는 두 그루의 영산홍 나무 사이다.
누가 봐도 머리채를 잡혀 소리 없는 비명(悲鳴)을 지르고 있는 꼴.
우아하고 아리따운 꽃얼굴들이 서로 짓눌려 햇빛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숨도 쉬지 못하는 듯하다.
연로하신 텃밭 주인의 한숨을 알아챈 텃밭 청지기인 남편이 꽃가위를 들고 영산홍 가지들을 정리해 위급 상황에서 상사화를 구출시켰다.
그제야 '휴... 살았다~' 큰 숨을 내뱉는 상사화.
좁은 땅이라 각양각색의 식물들 서로 약간의 희생을 감수해야 어우러져 살 수 있는데, 인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부대끼고 살지만, 적당히 배려하고 어느 정도 용납하며, 때로는 작은 불편 정도는 감수하다 보면, 어느새 불편함이 친밀함으로, 홀로 질렀던 비명(悲鳴)이 이해가 되는 어울림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쩌면 이런 것이 나이듬이 가져온 작은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