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에 고구마 모종 100개를 심으면 자리 잡고 살아나는 것은 7-80여 개뿐이라 텃밭 주인은 잠시 애를 태우지만, 하늘비가 한 번 듬뿍 내리면 어느새 싱싱한 줄기가 가득한 정글이 되어 이제는 고구마줄기를 정리할 일로 마음은 부산한데, 연로해진 몸이 따라가질 못해 또다시 애를 태운다.
엄마와 이런 시간을 보낸 지, 올해로 벌써 15년 째.
덕분에 남편과 나는 텃밭만 살펴봐도 엄마가 원하시는 게 뭔지 환히 알게 되어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즉시 급한 텃밭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요새는 폭염 중이라 낮에 일하는 건 불가능해, 텃밭 식물들을 정리하려면 전날 엄마 집에 가서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몇 주 전 주말도 온 식구가 새벽부터 고구마줄기를 걷어내고, 잔디를 깎고, 폭우로 구멍 난 텃밭 귀퉁이를 흙으로 잘 막아놓는 등, 참 많은 일을 했다. 엄마와 난 고구마줄기를 6시간 여에 걸쳐 다듬어, 김치까지 담았고...
잡초인지 먹을거리인지 분간하기 어렵도록 무성해진 텃밭을 보며, 본인이 하기에 부치는 일들이라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부탁하지 않아도 척척 정리가 되서인지 1932년 생 울 엄마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게다가, 꼬물꼬물한 증손주 둘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즐거운 화음을 보태니, 더워서 땀은 쏟아지나 이발한 잔디처럼 엄마의 마음이 날아가게 생겼다.
사실, 이런 소소한 일들로 엄마를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나와 남편이 주말마다 뵙는 엄마께 올리는 공경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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