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간 엄마네 텃밭을 관찰하다 식물 세계에는 버릴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씨앗이나 모종은 자라 열매를 맺다가 그 수를 다하면 뽑히지만 그것들은 다시 태워지거나 추운 텃밭 위에 그대로 놓여 땅 속 식물의 보호막 역할을 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마르고 삭아서 다시 땅 속 거름이 되어 새해에 심길 식물들의 양분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cycling이 창조 세계의 경이로움을 더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사방의 사물들을 점점 관심있게 보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들의 작은 표현으로 쉽게 버려지는 것들에게 한 번의 생명을 더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시작하게 된 것이 버리는 옷들이나 물건들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새활용(upcycling)' 이었다.
여기에는 멀쩡한 것을 버리는 건 죄라고 하셨던 구순 노모의 말씀과 손재주 많은 동생들이 알려준 창작품들도 한몫을 했는데, 요새는 퇴직 후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지인의 넥타이 한 보따리가 집에 와 있어서 그 녀석들을 어떻게 변신시켜 줄까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만든 것들이 실크넥타이 2개를 풀어 바둑판 무늬로 박아 정리한 후 만든 외출 가방, 실크 넥타이 하나로 만든 중형 파우치, 그리고 청바지, 면셔츠나 면바지에서 쓰고 남은 작은 조각들로 만든 파우치 몇 개였다. 물론 물건에 사용되는 안감이나 지퍼, 손잡이 등도 모두 '새활용(upcycling)' 제품이었고.
아주 화려하고 멋진 물건들은 아니지만, 버려질 아이들을 입양해 쓸 만한 물건들로 바꾼 후, 어딘가에 있을 새 주인을 기다리는 이 녀석들을 보면서, 지구 회복을 위한 세계인의 거창한 사명(?)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지만, 그저 지구 주민으로 내가 사는 땅을 위해 아주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일 하나 보태고 있다는 아리한 뿌듯함이 살짝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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