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텃밭 속 보화

신실하심 2023. 10. 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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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주인이신 엄마의 스케줄에 따라 드디어 고구마를 캐는 날.

 

비 온다는 예보가 있어, 맘이 분주하다.

 

무성해진 고구마 줄기 넝쿨을 죄다 걷어서 감나무 밑에 쌓아놓고, 고구마를 캐기 시작하는데, 고구마가 무처럼 땅 속에 반듯하게 앉아 있지를 않아서, 호미로 땅을 파고 또 파도 손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엄마 말씀이 아무래도 올해는 고구마가 많이 실지 않았나 보다 걱정하시는데, 그래도 땅을 열심히 파다 보니 보화 같은 고구마가 하나씩 나타난다. 

 

남근석처럼 땅 속에 혼자 우뚝 서 있는 녀석들도 있고, 엄마 젖을 찾는 강아지처럼 서로 맞대고 있는 고구마들도 보인다. 어떤 것은 신생아 머리만큼 크게 자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기까지 힘깨나 써야 하는 것도 있었다.

 

10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랑이지만, 일반인이 쭈그리고 앉아 호미를 내리쳐 흙을 갈라야 하는 작업이 참 어려운데, 텃밭 일을 경험한 이후부터는 장 볼 때 채소값을 깎지 않는다. 

 

2 이랑 정도 남았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려, 숨을 고르는 사이에도  감나무 밑에 앉아 고구마줄기를 정리하시는 엄마의 손은 멈출 줄을 모른다. 

 

엄마는 작년에도 오남매에게  고구마를 50개 정도씩 나눠 주셨으니, 올해도 그 정도는 주고 싶다시면서,  먼저 캔 고구마를 박스에 담아 옆에 놓아드렸더니, 대뜸 개수부터 헤아리신다. 자식이 뭔지...

 

비까지 맞으며 캔 고구마의 숫자는 엄마만 아실터인데, 그게 몇 개가 됐든 엄마의 마음까지 담긴 사랑덩어리니, 환갑 전후의 형제들은 먹을 복에 사랑 복까지 복이 넘친다.

 

일주일 후인 지난 주 토요일에 갔더니, 엄마는 고구마를 7kg씩 재서 오 남매 몫으로 나눠 놓으셨다며 하시는 말씀이, TV에서 나오는 얘기가 고구마 7kg에 28,900원 한다더라시며, 올해도 고구마를 많이 수확해 기분이 무척 좋다 하셨다.

 

무엇이 되었건 엄마가 기분 좋으시다니 내 기분도 무조건 좋았다. 

 

참고로, 예전같으면 엄마 혼자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기고 씻어 삶아 말려서 그마저 나눠주셨을 터이나, 몇 년 전부터는 버거워하셔서 그 작업을 못하시니, 그 고구마줄기는 몽땅 내가 가져와 교회 저장고에 넣어놨다. 이건, 권사님들과 함께 정리해 어느 주일 교회 점심 때 성도들과 함께 먹을 예정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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