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하루 일꾼

신실하심 2023. 10. 1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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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캐는 날.
 
손가락 골절로 수술받은 일꾼 남편 대신 지인이 고구마밭 일꾼으로 차출되었다.
 
10 이랑 정도의 밭이라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엄쉬엄 놀이 삼아 하겠다는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가 5분도 되지 않아, 이게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게 텃밭 일.
 
아마, 함께 한 지인께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터이나, 씩씩하게  고구마줄기를 걷어내고, 자리잡고 앉아서 고구마를 캐기 시작하는데 고구마가 앉아있는 모양이나 깊이가 불규칙해서 호미로 땅을 파고, 긁고, 쭈그려 앉았다 땅에 털썩 앉았다, 의자 놓고 앉아 캐고 또 캐는데 참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
 
나는 지인과 함께 고구마를 캐다가, 솎아서 씻어 소금에 절인 무청을 뒤집어 놓고, 재빠르게 주방에 들어가 김치 담글 풀을 쑤고, 다시 내려와 고구마를 캐다가 또 다시 주방에 올라가 점심 준비를 하는 등 정신없이 이 일 저 일 하다 보니, 지인 혼자서 묵묵히 고구마밭 일꾼으로 오후 4시경까지 고생을 하셨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엄마는 지인께 일당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시는데, 착한 일꾼께서는 재밌었다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아마 그 날 밤은 온몸이 쑤셔서 고생하셨을 터인데, 다음 날 아침 지인께 어떠신지 여쭈니 생각보다 괜찮다고 하신다. 이는 아마 내가 미안해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을 듯. 
 
나 혼자 했으면 깜깜한 밤중에나 끝났을 작업이 지인 덕분에 해 지기 전에 마무리가 됐으니 나에게는 수지맞은 날이었다. 
 
우스운 얘기 하나. 그 날 밤 눈을 감아도 자꾸 고구마가 아른거렸다는 지인의 얘기에 한바탕 웃음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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