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교회 일이 조금 늦게 끝나 부리나케 달려왔어도 오후 2시 반.
벌써 한 달 전부터 8월 마지막 주에는 호박 덩굴을 다 걷어내고, 무씨 뿌릴 작업을 해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주신 엄마가 우릴 무척 기다리셨을 터.
남편과 나는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참 호박밭에 들어가 씩씩거리며 덩굴을 걷어내는데, 엄마가 나오셔서 호박덩굴에서 쪄 먹을 호박잎을 떼어내신다.
고구마로 점심을 먹은 남편이 갑자기 허기진다고 시원한 물과 먹을 것을 갖다 달라며 잔디밭에 벌렁 드러눕는데, 이 모습을 본 엄마가 혼잣말을 하신다.
'내년에는 텃밭에 아무 것도 심지 말아야겠다... 최서방도 저렇게 힘들어하고... 근데, 저거 놀리면 잡초만 생겨서 텃밭이 너무 지저분해지는데... 내가 기운이 달려서 예전처럼 못하겠고...'
'엄마~~ 여든까진 할 만 했다며~~'
'그랬지~'
'우리가 아직 여든 안 됐으니 그때까진 우리가 할 테니 엄마는 말씀만 하세요~'
그제야, 엄마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부추밭의 부추꽃도 덩달아 웃는다.
우린 안다. 엄마의 두 마음을...
작은 텃밭이지만 혼자서는 점점 감당이 안 되는 땅을 놀리고 싶진 않은 마음 하나와 사위가 열심히 돕고 있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 또 하나.
그런데, 우리에게도 마음이 하나 있다. 엄마가 당신의 천국 세상인 텃밭을 통해 즐거워하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힘껏 돕겠다는 마음.
물과 떡으로 기운차린 남편이 슬슬 일어나 텃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삽으로 땅을 모두 뒤집은 후, 계분을 적당히 뿌리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 소면 넣은 냉국수와 녹두전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엄마의 말씀,
'다음 주에 올 때 무씨 한 봉 사와라~~~'
'예예~~~~'
집으로 돌아가는 나와 남편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아마 엄마도 오늘 밤에는 푹 주무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