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엄마 텃밭의 고구마를 수확할 때가 지났다.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원하신 후 회복 기간을 서울 아들네 계시는 노모는 육신의 병환보다 수확 때를 살짝 놓친 텃밭 고구마와 솎아주지 못한 김장무 때문에 마음의 병을 더 심각하게 앓고 계시는 듯하다. 대부분의 텃밭 관리는 노모가 하시지만, 이제는 허리가 많이 굽어지고 기력도 전과 같지 못해 주말에 내가 가지 않으면 채소관리가 지체되어 늘 속앓이를 하신다.
동생들은 텃밭을 그만 하시라고 성화지만, 그래도 그 텃밭 덕분에 낮에 햇빛도 쬐실 수 있고, 식물들과 교감하며 살살 운동도 되어 다리 근육이 체중에 비해 덜 소실되니, 엄마에겐 도움되는 부분이 더 많은 듯 싶어 어지간하면 주말엔 빠지지 않고 엄마 집에 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내겐 토요일이 몸이 더욱 고달파지는(?) 하루지만, 한편으론 엄마를 통해 나의 이십여 년 후의 모습을 당겨서 보며 내 노후를 예습하는 맘으로 그 날만큼은 엄마와 공감하는 시간들을 만들어가는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늘 엄마의 지시대로 손만 움직였던 때와 달리, 올해 고구마 캐기는 전적으로 나 혼자 해야했다. 전화상으로 어떻게 캐야되는지를 여쭤본 뒤 일단 고구마 줄기를 다 잘라 한쪽으로 치우고 호미로 살살 땅을 파서 고구마 캐기를 시작했다. 쪼그리고 앉아 하는 일에 익숙치 않은데다 늘 허리가 좋지 않아선지 한숨부터 나왔다. 한 손으로 땅을 파고 다른 손으로 흙을 퍼 내는 동안 각종 지렁이, 애벌레 등이 튀어나와 놀래가면서.ㅠㅠ
손바닥만한 밭이라지만, 점심밥도 먹지 않고 땡볕에서 3시간 정도 지나서야 고구마 캐기가 끝났다. 아이구 허리야.....
이제는 고구마 줄기를 잘라 골라내는 차례. 산같이 쌓인 고구마 줄기를 일일이 훑어 나물거리로 분리해놓는데 또 다시 3시간 여가 지나갔다.
캔 고구마와 다듬은 고구마 줄기를 부엌 뒤 베란다에 고이 모셔놓은 후 사용한 호미와 장갑, 바구니 등등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갖다 놓고, 쓰레기로 남은 못쓰는 고구마 줄기 등을 김장 후 마늘밭에 덮을 커버로 쓰신다셔서 다시 고구마밭에 올려놓고 나니 입에서 열이 풀풀 났다.
노모가 분당에서 성환으로 이사오실 때가 78세. 작년까진 텃밭 관리는 거의 혼자하셨는데 그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오늘에야 깨닫게 되었다. 구순 다 된 노모가 오, 육십 된 자식들에게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나눠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텃밭을 가꾸셨건만 경험해보기 전엔 그 수고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매우 죄송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늘 캔 고구마와 삶고 다듬어 말린 고구마줄기, 늙은 호박, 단감 등등이 곧 있을 김장 때 다시 오남매 앞으로 나눠지겠지.
이런 것이 노모의 지극한 사랑이란 것을 몸으로 알게 된 귀중한 고구마 캐기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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