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겨울나기 5종 세트

신실하심 2023. 1. 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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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높으심에도 혼자 사시는 엄마가 겨울을 잘 보내시면 또다시 한 해를 기약할 수 있기에, 형제들은 방문과 안부 전화로 늘 점검을 하는데, 방문 담당인 나는 엄마의 일상을 통해 어느 정도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지 엿본 지가 꽤 되었다.

 

쌀통에 쌀이 얼마나 있는지(20kg 한 부대를 약 3.5달 정도 잡수시니 쌀 소비가 나보다 많은데, 이는 삼시 세 끼를 꼬박 챙겨 잡수셨다는 얘기), 지난주에 가져온 국과 반찬을 얼마나 잡수셨는지로 식사량을 유추하고, 일과장에 기록한 하루의 일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치챈다.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 엄마가 쓰고 계신 일기장은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인지라 대 놓고 읽지는 않지만 성경 필사 책과 함께 올려진 것을 보면 여전히 삶을 기록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지난 주에 성경 필사 어디까지 하셨냐고 물으니, 매일 1장 반씩 쓰는데, 요한복음이 끝났다고 하신다. 끝에 가면 눈이 잘 안 보여 글씨가 엉망이라 시는데, 한국 나이 92세에 안경 없이 보실 수 있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라며 엄지 척했더니 웃으신다.

 

한 주간 동안, 뜨게질도 앞 판의 한쪽을 다 떠 놓으셨고, 셋째 동생 돌 때부터 있었다는 화투가 반들반들해지고 그림이 다 없어지도록 재수띠기(?, 아마도 숫자로 합산이 9, 19가 되도록 하는 건가?)로 나름의 치매 예방법을 수행하고 계시니,구순 엄마의 겨울나기는 성경필사/일기장/일과장/뜨게질/화투 의 5종 세트 덕에 혼자 계셔도 혼자가 아닌 나름의 독특한 일과를 보내며, 한 시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다.

 

엄마 말씀이 그래서,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신단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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