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와~ 백록담 !!!

신실하심 2022. 9. 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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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 새벽 5시 반.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오름 중 가장 크다는 사라오름을 다녀오겠다는 일념으로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와우 주차장이 거의 만차다.

 

나 같은 사람들 천지다.

 

편도 6.5km의 사라오름을 향해 어둑어둑한 어둠을 헤치고 싱싱한 조릿대가 하염없이 열 지어 있는 보행길을 말없이 걷고 또 걷는데, 울창한 나무들이 비를 대신 맞아줘서인지 걷는 동안 비를 맞는 느낌이 별로 없다.

 

각종 나무와 돌들, 야생화가 어떻게 서 있어도 모두 한결같은 작품들이라, 눈에 가득 담으려는데 마음밭이 작아서인지 다 담아지지 않아 속상하다.

 

사라오름 이정표를 따라 5.9km를 걸어 오름전망대 쪽으로 꺾어 들어서려는데, 여기에서 3.7km만 가면 백록담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껏 걸은 거리의 2/3 정도만 더 걸으면 한라산 정상이라는데 여보~다녀옵시다~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니...

 

남편 역시 코 앞에서 백록담을 보지 않고 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며 백록담 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해발 1600m를 지나니 높은 곳이라는게 실감 날 정도로 벼락 맞은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그득하고, 해발 1700m를 지나서부터 산 아래에서 보던 구름이 모두 내 발밑에 있어 비가 오지 않는다. 올라가야 할 길들은 점차 가팔라지고, 밟고 가야 할 돌 역시 거칠기 그지없다. 그동안, 월요일마다 15, 6km씩 걷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 

 

거의 6시간 걸어 한라산 정상에 서고 보니, 얼마나 감회가 새롭던지...1975년 대학 새내기 시절 여름방학에 올라왔던 한라산 백록담을 47년 만에 다시 보게 되다니... 내 맘을 읽었는지 호수를 덮었던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물로 가득 찬 백록담의 온전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 관광객들의 탄성 소리로 가득하다.

 

달랑 작은 물병 3개, 사과 2개, 귤 4개만 들고 올랐던 무모한 산행길이었지만, 그 무모함 덕에 다시 못볼 백록담을 보고 왔으니 배고픔마저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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