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묵상 (마태복음). 믿음 없는 자이나...

신실하심 2021. 12. 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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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내 삶의 권리를 내어드린 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 며칠 새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님에도 여러 가지 염려와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와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이게 뭐지? 그래서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평강의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다시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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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 아기 예수(죄에서 구원할 자)/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약혼녀의 잉태-요셉의 반응은 순종. 꿈으로 보이심. 내게도 꿈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이 나를 나보다 더 아시겠지.

하루 종일 임마누엘 예수님을 기억함.

 

4-6장 :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받으러 광야에 나가신 예수님. 사람만 시험을 받는 게 아니고 사람이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심.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 일. 따라서 시험을 받으시는 그때에도 성령의 보호하심을 받았다. 그렇다면 내가 받고 있다고 느끼는 시험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역시 성령님의 보호하심 역시 함께 임하고 있지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지만 아주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7-9장 : 티 있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어그러져 있고, 불안과 염려를 가져온다. 그 온전치 못한 눈으로 집을 지으면 창수가 났을 때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연약한 실존을 하나님이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짐)을 짊어지셨으니 전적으로 모든 것을 아버지께 의탁하고 그저 자유하자. 예수님이 세대를 거슬러 사역을 감당하신 것도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셨기 때문일 것.

 

10-12장 :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으로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실상 내가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들은 대부분 현실적 부족함이다. 하나님께 의탁하였다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는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는 결국 하나님을 본질적으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니, 나는 믿음이 없는 자다. 이런 인간의 실존을 이미 아신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자신에게 나오라 하신다. 그것만이 우리가 쉴 수 있는 길,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데 말이다. 내 속의 가득한 악하고 믿음 없는 마음이 결국 악하고 불안한 고백을 하게 하는 건데, 마지막 심판 날에 내가 행해온 것들로 정죄함을 받는다면 이는 너무 슬픈 일이다. 하나님, 자꾸 세상 밖의 현실을 보는 어리석음을 벗고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도록 도와주십시오.

 

13-15장 :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도 그 분의 이끄심을 강력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하나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다. 믿음 없는 자들의 특징이 의심하는 것(14:31),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는 것(15:9)이구나... 그래서 악한 생각과 비방 같은 더러운 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입을 통해 나와(15:18-19) 또다시 갈등과 불안을 야기시키는 것이구나. 나는 참 믿음이 없는 자이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16-18장 : 예수님의 표적을 청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믿음이 없는 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강조한 자신이 누구인지.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누구의 뜻인지를 알고 신뢰하는 게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일임에도 제자들은 필요한 떡과 머무를 집, 그리고 죽음보다는 현재의 삶에 더 집착하고 있다. 지금 나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예수님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음을 깨닫는다. 보이는 기적이 아니라, 그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 함께 계심에 더 큰 힘을 얻고 살아야 함에도 말이다. 아.. 나는 믿음 없는 자가 맞다... 부끄럽다... 

 

19-21장 :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다. 인간의 기본 속성은 자기 중심적인 것.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나누기보다는 가져야 하고, 으뜸이 되어야 하고, 자신의 몫이 많아야 하며  섬김을 받으려 하고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려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속성에 반한 행동들이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졌을지라도, 뉘우쳐 돌아서는 자들을 하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 칭하시며 천국의 약속을 하셨다. 나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만, 말씀과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짊어지심,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심으로 자꾸 어긋나게 걸으려는 내 발걸음을 하늘로 향하게 하시는 그 은혜와 사랑을 오늘도 경험하며 감사를 올린다.

 

22-24장 :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탐욕과 방탕,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자들이 큰 자, 지도자 또는 선생으로 칭함받기 원하는 회칠한 무덤 같은 모습을 버리고 안을 깨끗하게 준비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노아의 홍수 같은 사건이 우리에게 언제 올 지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기에 성령의 감동과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의지해 깨어 있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시길 간구한다. 살아 계신 나의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오늘도 보이는 것들에 의해 요동하지 않고 자유와 평강으로 넘치는 하루를 기대한다.

 

25-27장 :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는 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 주변에서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자던 제자들처럼, 눈이 피곤해 늘 깨어 있지 못하는 나. 나로서는 참으로 소망이 없으나, 온전한 순종으로 승리하신 나의 주님이 내게 임마누엘 되시므로, 그분을 의지해 깨어 있기를 소망한다. 신랑이 올 날과  때를 알지 못하기에 기름을 준비했던 다섯 처녀들처럼 말씀으로 깨어 있기를, 작은 자를 섬기고 주어진 내 몫의 일에 충성하기를 다짐한다.   

(수요예배 시 ㅇㅅㅈ 성도님의 간증을 통해 나의 믿음 첫 순간이 떠올랐다. 밤에 찾아왔던 고통 중에 이 정도만 아파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했던 그 때. 편안한 잠을 자게 되고 사영리로 스스로 고백한 주님 영접. 그리고 충만함. 찬양 등... 그 후 나는 42년이나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데, 그때의 감격은 잊고 세상 것으로 염려하고 있는 나...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지금 나를 깨우셨다. 감사...)

 

28장 :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셔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실 주님. 지금 내 곁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 하시는 성령님, 임마누엘 예수님,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친구, 위로자, 높은 바위, 안전한 요새이신데 스스로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믿음 없는 자의 표식인 것이다.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산들인데 순례자의 영안은 그 산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뵈었던 것을 떠올리며, 두렵게 하는 것들 속에서 나를 붙잡고 함께 걸어주시는 분,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가 다시 붙잡는다. 그래서 오늘 살 힘을 또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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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내가 믿음없는 자인 것이 더 확실해졌다. 티 있는 눈으로 보는 세상은 염려와 불안, 갈등 덩어리뿐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에 더 관심을 갖는 바리새인 같은 나의 내면을 보았다. 또한 늘 눈이 피곤해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나였고, 안은 더러운데 겉만 번지르르한 회칠한 무덤 같은 모습을 갖고 있는 자신도 보게 되었다. 사실, 내가 하는 염려나 불안 등이 어떤 실체가 있는 게 아닌 막연한 심리적 위축 같은 것인데, 관찰해 보면 어느 것도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저 하나님이 만지셔야 가능한 영역의 것들 뿐으로 예기치 않은 시점에 불쑥 엄습해오는 이런 류의 어두움에 허우적거리는 온전치 못한 내 모습을 말씀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참으로 사람으로서는 소망이 없다는 사실에 잠시 절망했다.

 

그러나, 임마누엘이신 아기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여전히 태초부터 세상 끝날까지 살아 계시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 나같이 믿음 없는 자라도 뉘우쳐 돌아서면 천국을 약속하신 것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나를 소생시키시는 은혜요, 소망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넘어진 무릎을 일으켜 주님이 가시는 방향에 어긋나지 않도록 또 다시 뚜벅뚜벅 걸으려 한다. 이것이 지금 나의 신앙 고백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