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박사학위 공부 때문에 내가 서울 가면, 친정엄마와 아버지가 우리 집에 내려오셔서 애들 챙기시고 집 봐주러 오가신 게 꼬박 4년, 그리고 박사 취득 후 애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 남편과는 기러기 생활을 1년 간 했는데, 애들은 내가 봐 주겠으니 네 남편 옆에 가 있으라며 아래 두 아이들과 미국 생활을 1년 반 정도 하셨던 엄마.
그 덕에 애들은 자기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할머니라며, 자신들의 대학 졸업식에 나는 그냥 일하고 할머니만 오시게 해 그 할머니와 나의 세 아이들은 오픈카 빌려 미국 여행도 함께 다녔던 터다.
이미 세 아이 모두 결혼해 자식이 줄줄이 있건만, 자기 애들이 나보고 할머니 할머니 부르면, 너만 할머니 있냐? 나도 할머니 있다~며 으쌰으쌰 하는 나의 자식들. 그 할머니, 나의 엄마가 올해로 90세이시다.
며칠 전, 곧 미국으로 떠나는 딸아이가 할머니 뵙고 간다며 잠시 엄마 집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의연하셔서, 내가 너를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같은 말씀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 그저 몸 건강히 잘 지내라는 말씀을 하시더니, 근데 네 양말에 구멍났다~하신다. 그러더니, 바느질 통을 가져와 양말 구멍을 메우시는데, 딸아이 왈~ 할머니~ 이 쪽도 구멍났어요~ 한다. 에구...
평생 아끼고 나누며 사셨던 어르신의 젊은 시절, 5남매의 양말은 성할 날이 없었을 터라 구멍 메우는 일은 아마도 매일의 일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양말을 기워 신는 사람들이 없는 때, 엄마의 양말 깁기는 박물관에나 가야할 기술이지만, 할머니가 기워 준 양말을 기꺼이 받아 신는 내 아이들은 할머니의 찐(眞)손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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