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여름이면 삼시 세끼 밥상에 돌아가면서 올라왔던 가지와 호박 그리고 오이 음식이 왜 그리 싫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어린 5남매와 드나드는 객식구까지 합해 매일 10여 명 이상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던 엄마의 서울살이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을 터. 그런 엄마의 식탁 준비에 호박과 가지, 오이만큼 값싸고 양이 많은 재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의 그 나이를 훌쩍 넘은 시간을 사는 지금의 나에게 여름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금방 딴 가지로 만든 가지나물, 오이무침 그리고 호박나물이라고 말한다.
사실 겉모습으로 치자면 별로 맛있는 채소로 보이지 않지만, 바로 딴 호박, 오이, 가지를 자르면 사방에서 진한 물이 송글송글 맺히는데,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별반 양념을 넣지 않아도 은은한 단 맛이 나서 먹고 또 먹게 된다. 중독성 있는 단맛이랄까?
지난 주말에는 엄마 텃밭에서 가지 4개, 오이 3개, 호박 1개를 따서 그 자리에서 조리를 하였다. 오이는 껍질을 벗겨 생오이를 적당히 잘라놨더니 손녀들이 오다가다 한 개씩 냠냠 잘도 먹는다. 가지는 갈라서 찜기에 찐 후 집간장과 마늘, 참기름 조금 넣고 살살 무치고, 호박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새우젓과 마늘을 조금 넣어 식용유 살짝 두른 팬에서 볶았다. 오이무침은 엄마 작품으로, 살짝 늙은 오이의 속씨는 발라내고 얇게 썰어 소금에 절여 물을 짠 후 파, 마늘, 고춧가루 넣어 무쳐 놓으셨다.
손녀들은 호박나물이 맛있다며 집중 공략하고, 남편은 세 가지 나물과 상추무침, 열무김치를 넣고 비비고, 난 나물 본연의 맛을 음미하느라 가지나물, 오이무침, 호박나물을 번갈아 먹고.
아무튼 텃밭에서 열심히 사람을 공궤하고 있는 여름 채소 트리오의 활약으로 주말 한 끼도 맛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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