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자세히 보아야...보인다.

신실하심 2021. 6. 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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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걷는 산책길이지만, 늘 같은 풍경이 아니다.

 

붉게 물들였던 양귀비밭이 퇴색하면서 지금은 야리야리한 기생초가 들판을 채웠고, 보랏빛 늪 두루미냉이나 살갈퀴, 하얀 도깨비가지 같은 들꽃들은 그 수(壽)를 다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래도, 오늘의 산책길이 새로운 것은 어제 못 보던 새로운 들꽃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무리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생초 사이에 머리를 치켜세운 연분홍 나비바늘꽃 하나가 눈에 띤다. 햇빛 한 자락 받아보려고 안간힘을 쓴 걸까? 살도 없이 키만 큰 가녀린 나비바늘꽃이 애처롭다고 느끼는 순간 드물지만 여기저기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녀석들이 보인다. 아 다행이다. 외롭진 않겠구나...

 

노란 꽃잎 가운데 꽃술 주위가 진한 적갈색으로 채색된 것이 일반적인 기생초인데, 돌연변이인지 몇 개의 꽃들은 진한 적갈색 꽃잎 아래가 노란색인 거꾸로 채색된 녀석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분명 기생초. 그런데 위아래 색깔이 바뀌어있다. 일률적으로 통일된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튀는 녀석들이 있는 것도 재미있다. 색깔이 바뀌었다고 기생초가 아닌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름을 인정하니 색감이 더 풍성해진 기생초밭이 되니 말이다. 

 

생명력이 강하기로 들풀만 하랴 싶은데, 나무 데크 옆, 파여진 가느다란 홈에 뿌리를 박고도 하늘 향해 곧게 뻗어 서 있는 노란 애기똥풀의 기상이 가상하다. 흙이 적어 물도 빨기 어려울텐데도 노란 꽃은 여전히 밝고 싱그러우니 조금만 불편해도 찡그리며 투덜거리는 인생보다 훨씬 훌륭하다. 

 

얼마 전 산책로를 침범한 길가의 들꽃들이 모두 갈렸는데 어느 새 다시 자라 맑고 투명한 새 삶을 일궈가는 붉은 토끼풀이 눈에 잡혔다. 원치 않게 기계에 잘려나갈 땐 삶이 다한 듯 해 억울해 했을 법도 한데, 오히려 화가 복이 되어, 길가 안쪽에 들어앉아 뽑히지 않고 편히 있던 토끼풀은 이제 퇴색되어 가는 반면, 이들은 오히려 보다 명랑한 빛깔로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으니 들꽃 생도 인생처럼 새옹지마인 것이 맞는 것 같다. 

 

왕복 1시간 여의 산책 시간 동안, 만나는 풍경들은 다름을 인정하고 화목을 추구하며, 화와 복이 한 끗 차이이니 어찌됐든 하늘 향해 꿋꿋이 견디며 오늘을 기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길잡이 천사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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