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담임 목사님이 '갇힌 광야'라는 제목으로 주일 예배 설교를 하셨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쳤는데(출 14:1-3)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뒤쫓아 오고, 앞에는 바닷길로 육로가 막혀 더 이상 꼼짝달싹 못한 그 상태를 '갇힌 광야'라고 표현하신 것.
그 상황에서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고, 모세를 원망하는 아우성이 하늘을 찌르자, 모세가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외치며, 죽음의 길이라 생각했던 바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바닷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고 동시에 구름기둥도 앞에서 뒤로 옮겨져 이스라엘 백성 쪽에는 밝은 밤이, 애굽 군사들 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어 저쪽에서 이쪽을 가까이 못하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출14:13-20)
인간이 갇힌 광야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고 주저앉아 죽음을 맛볼 때 비로소 드러나는 생명의 길. 그래서 바닷길은 가나안을 향한 희망의 길이 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세계 열방이 무력함에 빠져 있다. 물론 개개인의 삶 역시 '코로나 Blue'를 넘어 '코로나 red'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울하고 어둡다. 그러나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고난 시간에도 천사가 수종 든 것처럼, 여전히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삶의 희망이 되심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 무거워 벽에 걸어놓지 않았던 '希望'이라고 쓴 오래된 액자 하나를 꺼냈다. 을사늑약(1905년)이 체결되던 해 태어나신 외할아버지께서 해방 후 3년 뒤인 1948년 경 일가친척의 양복점 간판을 위해 습자하셨던 희망(希望)이라는 글씨를 그 당시 16세 셨던(중2 때였다고 하신다) 엄마가 헝겊에 복사해 수를 놓은 것인데 몇십 년 간직하셨다가 내게 주셔서 액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경 73년이나 된 작품이다.
우리는 코로나 19로 고통받고 있는 시간이 올해로 겨우(?) 2년 째이지만, 나의 외할아버지 세대는 그 당시 40년 간 일제 강점기 하에서 얼마나 깜깜한 세월을 사셨을까? 그러기에 폐허가 된 땅이지만 1948년, 해방의 시대에 '희망'이라는 단어는 그 당시 온 국민의 가슴속에 가장 뜨겁게 새겨진 단어였으리라.
이런 스토리를 알기에 액자를 벽에 걸며, 여전한 코로나 pandemic 상황에서도 다시 희망(希望)을 노래한다.
갇힌 광야에서 바닷길을 생명길로 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는 당신의 백성들과 이 땅을 살리실 때를 이미 작정하고 계실 터이니.
그래서 지금은 희망(希望), 또 희망(希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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