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들꽃 동행

신실하심 2021. 6. 2. 11:27
728x90

작년 가을, 손목 골절로 박아놓은 금속판과 철심을 손목뼈에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 절개 부위가 아물 때까지 늘 해오던 새벽 수영을 멈추게 되었다. 그렇다고 운동을 하지 않을 순 없고. 남편이 새벽 수영하는 동안, 난 집 앞 갑천변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마스크, 선글라스, 모자로 한바탕 가린 내 모습이 영 나같지 않다. 암튼 허리 펴고, 아랫배 코어에 힘주고, 시선은 멀리 보고, 보폭은 되도록 크게. 그런데 걷다가 자세가 점점 흐트러진다. 바로 사방에 핀 예쁜 꽃들 때문. 

 

산책로 비탈길에는 샛노란 금계국이,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사이의 넓은 평지에는 다홍빛 관상용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펼쳐있어 황홀하다. 어디 그뿐인가? 산책로 옆길에는 진한 보랏빛 살갈퀴가 무리 져 피어 있고 조금 더 걷다 보니 연한 보랏빛 늪 두루미냉이 무리가 뽐내며 서 있다. 우아하고 총기 있게 생긴 이 녀석의 이름이 모습과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들꽃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이름을 외우며 걷는 중에 빨간 열매를 한껏 품고 서 있는 뽕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자기 자리가 아닌 듯한데 어떻게 여기에 서 있지?

 

대부분 덜 익은 빨간색 오디라 좀더 익어야 먹을 수 있겠다 하는 순간 안쪽 가지에 붙어있는 검은색 오디가 눈에 띄었다. 얼른 따서 먹어보니, 달콤함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웬 횡재? 내일도 오가며 두서너 알 정도 맛을 볼 수 있으려나?

 

젊어서는 화원에 있는 외래어 이름의 꽃들만 꽃인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무심히 지나쳤던 들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도 이름이 있을 텐데... 수수해서 눈길을 빨리 끌지 않는 들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태가 여간 고운 게 아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들꽃 이름 외우기. 그러다 손녀들과 산책할 때 주변에 보이는 꽃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같이 외우는 게 취미가 되었으니.

 

아무튼 걷기 첫 날, 혼자였지만 실제로는 산책길에서 만난 여러 꽃들과의 행복한 동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