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받아 쓰고 다시 쓰는)가 체질인 내게 젊은 시절 기를 쓰고 수집한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이 마그넷이다.
미국 유학 시절, 생활비를 아껴 여름휴가에 가족과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미국의 도시나 주(州)의 모양을 한 자석을 한 개 한 개 모아 냉장고에 부착해 놓고 가끔씩 다녀온 곳을 추억하곤 했다.
마트 고기값이 1불 오른 것엔 엄청 민감했지만, 자석 1개에 5~10불 하는 것에는 지갑을 쉽게 연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자석 하나에 내 추억을 곱게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덕분에 이사 다닐 때마다 이 자석들은 예쁜 상자 안에 넣어져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텍사스로, 또다시 한국의 울산과 대전으로 늘 동행했던 대접받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 덧 자석들의 나이가 30세(?)가 넘다 보니 세월의 먼지가 묻어 끈적거리고 겉면이 거뭇거뭇해져 먼지를 닦아내도 티가 나지 않아 언젠가부터 냉장고에서 떨어져 나와 상자 속에 담겨 주방 서랍 한쪽에 누워있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세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퇴직하면서 이제는 간단히,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방 서랍을 열다 이 자석들을 발견한 것. 미국의 어지간한 도시들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 일본, 중국,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 그간 많이 다녀왔구나 생각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자석을 샀던 그때에는 결코 잊지 않을 것 같던 그 시절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석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4살 경의 막내 딸아이도 만나고, 중등, 고등이던 둘째와 막내, 70대인 친정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자석을 좋아한다 생각했던지, 둘째가 중학교 소풍 갔다오면서 사다 준 신랑 신부 자석은 40대의 나를 추억하게 하였다. 자석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모든 게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후패하는구나. 그렇다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온 세월이지만, 그래도 힘껏 살아냈기에 그보다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없고, 견디며 지나 온 세월들을 또다시 마주해 좌충우돌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이 좋다. 여전히 불완전한 내가 나머지 인생살이 동안, 부딪치고 겪어야 할 일들이 또 닥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는 덜 요동치는 시간들을 보내려고 기도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거뭇거리고 끈적거리는 자석들을 더 이상 보관하지 않고 버리기로. 자석을 버린다고 지나 온 내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사진으로 남겨 두고두고 추억 속에서 만나기로.
자석들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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