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노모의 평생 동무는 엄마의 손이 아닐까 한다. 구멍 난 양말 깁고, 버리는 헝겊을 모아 밥상 덮개를 만들거나 작아진 털바지의 실을 풀어 더 큰 속바지를 짜 주셨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 볏짚을 주워와 나무를 감싸주고 남으면 또다시 항아리 뚜껑을 만들어 동치미 단지를 덮고, 5, 60대인 자식들이 가져온 바지 등의 옷 수선을 결코 마다하시지 않는다. 요즘도 햇빛 나는 시간에 아직 수실이 남았다며 동양 자수를 놓으시고, 그도 저도 못할 시간이면 혼자 사시는 집이 뭐가 그리 더럽다고 매일 쓸고 닦으신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엄마의 네 딸들도 자신의 손을 잠시도 쉬게 하지 않는 이상한(?) 유전자를 물려 받았는지, 다들 출중한 손재주가 있어 스스로 만들어 입고 달고 이러면서 산다. 그중 손재주 없는 딸이 나인데, 솜씨는 없지만 그래도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면 엄마 딸이 맞는 듯싶다.
작년 미국 작은 애 집에 손녀를 봐주러 석 달간 머물 때 아기가 잠자는 동안 무료함을 달랠 겸 이것저것 만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성경 커버이다. 인도에서 오랜 기간 선교사로 섬기시다가 미국에 정착해 alteration shop을 하시는 안사돈께 부탁해 버리는 면 조각을 받아 며느리 책가방, 화장품 파우치,
벽걸이 십자가, 아기 기저귀 주머니, 작은 성경 가방 등등을 만들었는데, 마침 성경책 겉 가죽이 자꾸 뜯어져 가방 안이 더러워져 고민하다 만든 것이다.
갖고 있는 천들이 모두 자투리라 색과 모양을 맞추는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중에 뭔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있고 머리 쓰면서 손을 움직여 치매도 예방하는 꽤 괜찮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더러워지면 커버를 벗겨 손빨래해 다시 끼워 넣으면 되고, 헝겊이라 손맛도 좋아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애착이 가는 물건이 되었다.
얼마 전, 성경 공부 중 지인이 내 성경책 커버를 보고 혹시 어디서 샀냐고 물으며, 좋아하는 성경책인데 겉가죽 껍질이 자꾸 벗겨져 아예 가죽을 떼어놓았다 한다. 마침 집에 헝겊도 있고 해서 그 성경책을 가져와 며칠에 걸쳐 만들어 드렸다. 내가 느낀 지인의 색깔과 비슷한 천으로. 그분은 겉가죽을 벗겨낸 터라 커버 속에 빳빳한 도화지를 넣고 봉하여 만들었는데 꽤 괜찮게 만들어져 내심 흐뭇했다. 아무튼 값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니 명품 아닌가?
'성경이 집사님의 가장 친한 벗이길 소망합니다. 샬롬'이라는 쪽지와 함께 전달하며, 그분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날마다 빚어지시길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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