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아카시아 꽃 버무리

신실하심 2019. 5. 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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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번씩 노모가 사시는 성환에서부터 온양 목욕탕까지 가는 30여 분의 도로 길은 엄마와 내가 계절을 확인하고 시골 마을의 변화를 찾아내는 놀이 시간이며, 때로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불러와 팔순 후반의 노모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게하는 기특한 길이다.


올해로 10년 째, 매주 지나오는 같은 길 옆 수풀 속에서 진달래꽃을 따다 화전과 진달래꽃 꿀청을 만들기도 하고, 쑥철엔 쑥개떡과 쑥버무리를,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엔 아카시아꽃 버무리를 해먹기도 했다. 게다가 철마다 벚꽃, 복숭아꽃, 배꽃, 해바라기 구경은 물론이고 남의 집 채소가 자라는걸 보면서 엄마의 텃밭 채소와 비교도 하는. 멀리가진 않지만 여행의 기쁨을 느끼게하는 즐거운 길이다. 


작년 이맘때에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신데다 나도 골골해 아카시아꽃과 찔레꽃이 피고지는 것을 충분히 보지못한 것이 늘 아쉬우셨는지, 계절이 바뀌고 다시 새해가 되서도 아카시아꽃 따서 만든 버무리를 잡숫지 못했다는 엄마의 소리를 내내 들어야했다. 


무엇이 됐든 엄마가 원하시는대로 해드리고자하는 게 내 식의 효도인지라 올해는 어찌됐든 아카시아꽃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지 하던 차에 지난 주 드디어 고속도로 옆에 활짝 핀 아카시아꽃을 발견하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다고 알려드렸더니 '벌써? 우리 동네엔 안 폈던데' 하신다. 내가 잘못봤나?


암튼 목욕가는 길 옆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잘 보시라고 단단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얼마지나지 않았는데 엄마 눈에 아카시아꽃이 들어왔다. '어라 벌써 꽃이 많이 폈네~' 그 때부터 엄마의 눈은 매의 눈이 되어 길 옆 수풀 속 아카시아꽃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드디어 목욕하고 돌아오는 길, 아까 봐 뒀던 아카시아 나무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 때 만큼은 구부러진 허리도, 기운없음도 잊고 오직 채취하는데 정신팔려 젊은 나보다 더 팔팔해지신다. 아카시아꽃만 따려고 했는데, 그 밑에 연한 쑥이 얼마나 이쁘게 서 있는지 엄마의 손이 더욱 빨라진다. 순식간에 쑥과 아카시아꽃이 비닐 봉지에 한 가득. 차 안에 들어오시고서야 다시 '아이고 허리야~' 


집에 와 따온 쑥과 아카시아꽃을 다시 정리해 분리. 쑥은 데쳐 가을에 쑥송편 재료로 쓰기 위해 냉동실로 보내지고, 다시 아카시아꽃 버무리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꽃잎을 따서 깨끗한 물에 여러 번 씻어낸 후 물기를 없애고, 이를 쌀가루, 소금, 설탕과 적당히 섞어 베보자기 위에 올린 후 찜통에서 30분 정도 찐다. 불을 끄고 10여 분 뜸을 드린 후 그릇에 담아내면 버무리 끝.


비싼 재료로 만든 떡처럼 화려하거나 우아하진 않지만, 아카시아꿀이 담긴 아카시아꽃 버무리는 계절을 기억하게하는 은근한 맛이 있어 매년 거르고싶지 않는 음식이다. 게다가 훗날 엄마가 안 계실 세상에서 엄마를 기억하게해 줄 특별한 음식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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