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에 맺은 아기 감들, 강낭콩 꼬투리들, 여린 고춧대에 열린 파란 고추들, 그리고 둥글둥글 파란 토마토와 이미 수확한 마늘들을 보다가 색깔과 모양과 맛, 쓰임새가 모두 다른 아이들을 구별하지 않고 다 품어 주는 땅의 너그러움을 발견하고, 평생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밟혀준 땅에 대해 고마움 한 번 느끼지 않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식물들은 열매를 맺음으로 자신의 뿌리를 뻗게 해 준 땅에게 은혜를 갚는데, 나는 이 땅에 무엇으로 은혜를 갚고 있는지 되돌아보니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이렇듯, 나이가 들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눈이 떠지면서 주변을 보는 관점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이것은 텃밭 식물들을 통해 창조 세계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사소한 것조차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창조된 놀라운 창조물이며 이들과의 공생 없이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느껴지면서, 숨 쉬고, 말하고, 먹고, 걸으며, 생각하고, 자고 깨는 일조차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은혜 안에 있음이 참으로 경이롭다.
덕분에 한 풀 꺾인 자존감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워지는 듯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평안하게 숨쉬고 있는 오늘, 지금 더 사랑하고 더 나누고 더 섬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훗날, 내가 살아온 흔적이나 열매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거룩을 품고 살려고 애썼다는 사실 하나만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이름 없이 사라진다 해도 그다지 섭섭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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