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나물 캐는 노할머니

신실하심 2023. 3. 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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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주말 오후, 텃밭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야생 봄나물 헌팅 시간이다.

 

쌉싸름한 머위 어린잎과 겨우내 추위 속에서도 실아남은 쪽파, 비닐 속에서 호사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노천에 드러나 추워서 부르르 떠는 얇은 시금치들, 그리고 5월 쯤이면 나리꽃 모양을 한  주황색 꽃이 필 원추리 새싹들을 조금씩 땄다.

 

쭈그리고 앉아 칼이나 가위로 일일이 잘라내야 하는 봄나물 채취는 우리 같이 관절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금지 행동인데, 봄을 싱싱하게 먹겠다는 일념으로 엄마와 나는 말도 없이 봄나물만 쫓고 있다.   

 

머위잎이나 원추리 등은 지금 아니면 먹을 때를 놓치기에, 텃밭 구석구석을 뒤지는데, 사람 손 닿지 못하게 넝쿨 장미가 서 있는 울타리 너머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원추리가 노모의 열심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사실, 먹으려고 텃밭 나물을 캐긴 하지만, 더 재밌는 것은 채취할 때 느끼는 희열감. 

 

허리 굽고 무릎 아픈 엄마도 나물 캐는 시간만큼은 주름도 펴지고 아픔도 훌훌 날아가 그저 봄나물과 엄마 밖에 없다시니, 마치 영혼이 은총 입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 세상은 간 데 없고 주님과 자신만 보이는 것 같은 곳, 이 곳이 바로 텃밭 천국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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