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물 주는 엄마

신실하심 2023. 3. 1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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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자식들을 살피며 사셨던 엄마가 78세에 텃밭 딸린 이곳으로 이사 오시면서부터 살펴야 할 자식들(?)이 더 생겼다. 물론,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보살핌이다.

 

비 올 땐 흙이 파일까 봐, 안 오면 목 마를까 봐, 바람 불면 얼까 봐, 이것저것 거둘 땐 버려질까 봐 늘 노심초사하시는데, 얼마나 식물들을 사랑하시는지, 텃밭이 정원 같다. 

 

땅을 고르다 나오는 크고 작은 돌멩이도 엄마의 텃밭에서는 구역을 나누는 쓸모 있는 녀석들로 변신하고, 어디 선가 날아와 자리 잡은 잡초도 뽑지 않고 텃밭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하신다. 하얀 민들레와 질경이가 그랬다. 세상에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시면서.

 

이 자그마한 땅이 주는 사랑과 생명의 경이로움이 얼마나 큰지, 텃밭 식물이 자신이 낳은 사람 자식보다 더 큰 위로가 된 지 꽤 오래되어, 엄마 자신은 지금 천국에 사신다고 말씀하신다. 

 

잠들기 전에는 이 밤에 잠자듯이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십사 기도하고, 새 날에 다시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하며 주신 하루를 힘을 다해 사시는 엄마. 구부러진 허리와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이 빛나는 것은 이렇게 살아 있는 오늘을 텃밭 생명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 날처럼 힘껏 사시는 때문일 것이다.

 

92세 노모처럼 나도 그렇게 살다 천국에 가고 싶다.

 

오늘따라 바닥에 주저앉아 텃밭에 물을 주는 엄마의 뒷모습이 무척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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