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꽃을 보며 인생을 생각하다

신실하심 2022. 10. 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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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든 시원하든, 땅에 뿌리를 박은 식물들은 계절의 순환에 맞춰 피고 지고 또 피는데, 같은 텃밭임에도 방문할 때마다 늘 새롭게 느껴지는 건 바로 시절을 좇아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꽃들 때문일 거다.

 

10월 중순. 기온이 뚝 떨어져 최저 기온이 10도 안팎이 되니, 여름 내 피고 지던 꽃분홍 채송화의 초록 줄기가 꽃처럼 붉어져 올해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라지는 꽃대신 씨앗을 품고 조용히 내년을 기다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고춧대에 피고지던 손톱만 한 하얀 고추꽃도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얼굴 한 번 보려는데 모두 고개 숙여 땅만 보고 있다. 할 수 없이 내 몸을 거의 땅에 대고 고추꽃을 훔쳐보는데 야무지게 붙어있는 5개 꽃잎이 얼마나 비단같이 투명하고 야리야리한지, 꽃이 만들어내는 고추의 매콤함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의아하다. 고추꽃을 보려고 땅에 엎드린 순간 펼쳐지는 파란 하늘의 넓은 품. 아...겸손해야 하늘을 볼 수 있는거구나...말씀이 주는 겸허함이 바로 이런거구나...

 

주인이 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아는 듯, 5월부터 피었다 지고 있는 카네이션이 기온이 떨어지는 때임에도 마지막 힘을 내 상아색 고운 꽃을 피우고, 구순 넘은 주인에게 계절을 넘어 한 번 더 보시라고 봄에 피는 명자나무 꽃의 봉오리가 터질 듯 말 듯 연분홍 속살을 내비치고 있다. 늘 예쁘다고 만져주는 연세 드신 주인에게 힘내시라...웃으시라...말을 거는 것 같다.

 

이에 질세라, 이제는 내 세상이라며 하얗고 노란 소국이 서늘함을 무릅쓰고 씩씩한 꽃을 피우니, 여기저기 핀 꽃들을 보면서 창세기 5장에 언급된 것처럼 꽃처럼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로구나...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것이 인생일진대, 짧은 인생 동안 갖는 시기와 질투, 분냄과 분쟁, 소유와 탐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고추꽃처럼 겸손하게, 늙어도 추하지 않은 채송화같이, 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주인에게 헌신하는 명자나무 꽃이나 카네이션처럼, 힘 있을 때 힘껏 꽃을 피우는 소국의 충성을 닮아, 내게 주어진 나머지 인생의 시간이 하늘의 시간과 점차 가까이 맞닿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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