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넘어져 손목이 골절돼 입원해 수술 받아야된대요~~ 오늘 엄마 집 못가겠어요...ㅠㅠㅠ'
'어쩌다 그랬니? ㅠㅠㅠ 근데 니가 안 오면 김장 무를 솎아서 처리해얄텐데 큰일이네..ㅠㅠㅠ'
전화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자식 걱정과 텃밭 걱정이 혼합된 한숨소리로 점점 변해간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남편 왈 '그 무청 김치 진짜 맛있는데...ㅠㅠㅠ'
사이사이 작은 녀석들을 뽑아내야 김장 무가 쑥쑥 자라는데, 연세드셔 몸 움직임이 빠르지 않은데, 녀석들은 밤새 크니 아침마다 텃밭의 무를 보면서 노모의 맘은 무척 타들어가셨을 터다. 그 맘을 알기에 수술한 손목을 부여잡고 수술 후 열흘 째 쯤 남편과 함께 엄마 집을 찾았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니, 김치 담글 생각은 엄두도 못냈는데, 남편 본인이 다 버무릴테니 나는 옆에서 말로만 하면 된다면서 가잔다.
내가 온다는 전화에 엄마가 노구를 이끌고 부랴부랴 무청을 솎아내 씻고, 소금에 절여 놓으셨다. 그 다음부터는 나와 남편 차지. 내가 한 손으로 밀가루풀을 쑤는 사이, 남편은 절여진 무청을 씻어 소금기 걷어내 건져놓고, 양파와 배를 껍질 벗겨 두툼하게(?) 남자 손가락처럼 썰어 놓았다. 맘 같아선 살짝 잔소리를 하고픈데, 애쓰는 것이 고마워 그냥 참기로 하고.
늘 하던대로 식힌 밀가루풀에 빨간 생고추 간 것과 고추가루 1:1, 마늘 넉넉히 4큰술, 멸치액젓 4큰술, 소금 적당히(간간하게), 매실청 3큰술을 넣고 섞은 후 썰어 놓은 양파(4개 정도)와 배(1개), 대파(3뿌리)를 다시 넣고 혼합한 후 간을 봐 간간한 맛이 나면 양념 준비 끝.
양념 그릇에 물기를 뺀 무청을 넣고 열심히 비벼 김치통에 넣고, 양념 그릇에 남은 양념을 버리기 아까워, 식수 조금 넣고 씻은 후 소금 살짝 넣어 김치통에 넣어주면 무청 김치 완성이다. 벌써 12년째 가을이면 김장 전까지 서너 번은 솎아 만들어 온 무청 김치인지라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 것이지만, 오늘의 김치는 생전 처음으로 김치라는 것을 만들어 본 남편의 솜씨인지라 더욱 특별하다. 본인도 만들고 난 후 스스로 꽤 대견해하는 눈치인데, 맛까지 괜찮으니 더 신날 밖에.
아무튼 손목 골절 덕에 남편이 만든 특별한 김치까지 먹게 되니, 아픈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물에 떠 있는 배 덩어리와 두툼한 양파살이 눈 식감을 살짝 해치지만, 어찌됐든 맛은 최고니 남편이 버무린 인생 최초의 김치는 그런대로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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