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노모의 취미 생활

신실하심 2020. 9. 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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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젊은이 못지않게 많아 다섯 자식들과 참 많은 곳을 여행하셨다. 우리와는 미국의 50개 주를 거의 다 밟으셨고, 며느리와는 러시아, 만주, 대마도, 몽골 등을 역사 기행 팀들과 여러 번 다녀오셨으며 때로는 손녀들과 한 팀으로 국내 여기저기의 역사유적지를 도시기도 했다.

 

베트남, 일본, 태국, 말레이지아, 유럽 등도 가족 여행으로 여러 번 다녀오셨으니 엄마 연세에 이처럼 여권이 화려한 사람은 별반 없을 듯하다.   

더 놀라운 것은 몇십년 된 외국 여행지의 이름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 우리는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된 아주 작은 장소의 에피소드까지.

 

이런 엄마의 여행 기억의 발원지가 바로 돌멩이다. 어디를 가실 때마다 여행지의 특색을 나타내는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오시며 그 돌멩이에 엄마의 여행 추억을 꼭꼭 담으시는 듯하다. 그 돌들을 집 안에 예쁘게 장식해 놓고 오가며 한 번씩 시선을 주니 40여 년 전 여행이 방금 전 여행처럼 아주 선명하게 남는 것 같다. 엄마의 독특한 취미 생활의 하나다.

 

어디 그 뿐인가? 폭염과 폭우로 텃밭에 나가기 어렵던 시간. 엄마는 집에 남아 있던 자투리 헝겊으로 골무를 40여 개나 만들어 놓으셨다. 이것도 물론 엄마의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 엄마가 아들딸 5남매에 손주들이 11명, 증손주가 8명이니 한 번에 모이면 30명이 훌쩍 넘는 가솔을 거느리신 터라 한 집에 골무 하나 씩이 고작이겠지만, 손 끝을 찔려가며 돌아가시기 전에 집에 남은 헝겊을 다 소진하시겠다는 엄마의 집념에 두 손을 들 지경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엄마 오래 사시라고 자투리 헝겊을 자꾸 갖다 놓는다.

 

손 놀리지 못하는 날이 죽는 날이다, 몸이 아파도 일할 땐 아픈 줄 모른다시는 엄마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작은 돌멩이에 눈길을 주고, 헝겊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평생 몸으로 삶을 사신 엄마가 이제 내 속으로 들어와 취미 생활조차 닮아가는 나를 보며 그 엄마에 그 딸인가 싶어 우습기도 하고 한편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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