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49m나 되는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에 상륙해 내륙인 엄마 집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난 주말 엄마 집 현관 앞에는 담벼락에 매달려 누렇게 익어가던 늙은 호박들이 단박에 떨어져 나간 것. 좀 더 매달려 있었으면 더 맛있게 익어 먹는 이의 미각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을 텐데. 흙투성이에 골절된(?) 늙은 호박들이 사납게 몰아친 태풍을 원망하는 듯하다.
그런데 텃밭 한 켠에 생뚱맞게 상추 몇 뿌리가 푸릇푸릇 올라와 싱그러운 초록으로 사람을 반긴다. 웬 가을 상추? 엄마 말씀이 어디선가 날아온 상추씨앗이란다. 먼지같이 작은 씨앗 몇 톨이 폭염과 폭우를 딛고 땅 속에서부
터 생명을 뿜어 우리 눈 앞에 씩씩하게 서 있는 것이다. 아직은 어려서 뜯어 먹기에 민망하지만, 한주 정도 지나면 꽤 쌉쌀한 맛을 낼 정도로 자라 있을 것이다. 상추 대장 남편이 가장 반가울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매년 이맘때쯤이면 포기를 더해가며 늘 그 자리에 꽃을 피우는 붉은 과꽃까지 태풍이 오고 폭우가 와도 아니면 폭염으로 목이 말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피어 텃밭 주인에게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도 믿음직하고 깊다'(과꽃의 꽃말)고 속삭인다.
그리고 그 텃밭의 주인인 89세 노모는 태풍으로 이리저리 쓰러진 나무를 세우고, 폭우 덕에 더 우거진 고구마 줄기를 뜯어 우직하게 정리하신다.
비록 본인이 잡숫지 못해도 결코 먹을 것을 버리지 못하는 '아낌'의 미덕과 정리해 놓으면 가져가는 이가 먹기 좋을 것이라 여기는 '나눔의 배려'가 어우러져 텃밭과 그 텃밭의 주인은 태풍이 와도 서로를 고마워하며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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