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더웠던 8월도 입추가 지나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랑거려 며칠 전의 무더움이 살짝 잊혀지려한다.
8월 초 어느 주말, 이른 아침부터 너무 뜨거워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계단 옆 손잡이에 넝쿨손으로 틀실하게 감아올린 더덕 줄기에 더덕꽃이 더덕더덕. 뜨거울텐데 잘도 버티고 있는 더덕꽃들이 너무 기특하다. 집 뒤편으로 가니 머위가 얼마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날마다 들락거리는 동네 아기고양이가 지붕삼아 잠을 자도 될 정도로 무성해 가위로 다 잘라 내어왔다.
텃밭 한 쪽에는 3년 전에 심은 아기 감나무가 늠름하게 자라 가지마다 감을 한아름 맺혀놓고 한껏 뽐내고 있어 엄마 집 지켜주는 집사같아 믿음직스럽고. 입추 지나 찬 바람이 부니 더위에 축 늘어져만 있던 호박 넝쿨에 호박이 여기저기 맺히고, 장마비 한번 오고 나니 그리 자라지 않던 고구마 줄기가 어느 새 굵어져 숲을 이루며, 땅이 척박해 비실비실하던 부추도 하늘비 한번 먹고나니 한 뼘 정도 자라 이발을 시켜주었다. 부추꽃이 핀 것을 보니 올해는 이번이 마지막 채취일 듯하다. 계단 위 화분에는 생전 처음보는 문주란 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엄마 텃밭의 8월 풍경이다.
텃밭 여기저기에는 날라온 씨앗이 만들어 낸 근대도 있고, 바람에 지지대가 쓰러졌어도 적당히 열매를 맺어주는 토마토, 미끈하지는 않지만 노모의 식탁에 가끔씩 올라오는 가지 등도 고마운 채소들.
지난 주의 미션은 고구마줄기 채취. 줄기를 솎아주지 않으면 영양분이 줄기로 가서 정작 고구마는 잘 자랄 수 없기에 고구마줄기를 솎아줘야 하는데, 줄기가 숲을 이뤄 그 사이에 들어있는 모기가 무서워 가장자리 고구마줄기만 걷어냈다.
엄마와 내가 텃밭의 채소를 채취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를 다듬으려면 또 한 시간 이상 소요되니 사실 시장가서 돈 주고 사먹는게 더 쌀 지 모르나, 텃밭 채소와 함께 움직이시는 노모의 육적 건강과 씨앗을 심고 가꾸며 내년을 계획하시는 노모의 삶의 의욕을 생각하면 돈 주고라도 같이 해야할 귀한 활동이라 생각해 오늘도 구순 노모와 육순 딸이 텃밭 놀이를 계속하는 중이다.
'엄마의 텃밭, 감사 그리고 흔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순 노모의 손대접-나눔의 도리 (0) | 2019.09.22 |
---|---|
2019 김장 준비 시작 - 텃밭에 무씨 뿌리기 (0) | 2019.08.26 |
텃밭 채소들의 변신 ! (0) | 2019.07.22 |
2019년 7월 노모의 텃밭 풍경 (0) | 2019.07.18 |
마늘과 감자 캐기 (0) | 2019.06.19 |